사실에 근거한 내용으로 공직선거에 나오려고 하는 '예비후보자'를 비방하는 행위도 처벌하도록 한 현행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했다. 예비후보자에 대한 사실 적시까지 처벌하게 되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침해된다는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27일 공직선거법상 후보자비방죄 조항의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 부분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공직선거법 제251조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등을 비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을 헌재에 헌법소원 청구한 사람은 양건모 전 바른미래당 노원구청장 후보다. 그는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예비후보를 비방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해 2월 벌금 600만 원을 확정받았다. 이로 인해 피선거권이 박탈된 양 전 후보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대법원이 기각하자,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예비후보자 등을 향한 사실 적시 비방까지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론의 장에 뛰어든 사람의 명예를 일반시민보다 더 두텁게 보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 사건 조항은 '후보자가 되려는 자' 등을 헐뜯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면, 그 내용이 허위인지 진실인지를 불문하고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며 "사실에 기반한 비방을 처벌하게 되면, 공직 적합성에 대한 자료를 얻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기회를 제한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헌재 판단이다. 헌재는 "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을 표현한 사람은 수사나 재판의 위험성에 놓이게 되고 표현의 자유 위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공직 후보자는 공적 인물이므로, (비방 내용이) 진실한 사실일 경우 그것이 공익에 관한 것인지 다시 가릴 필요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종석·이은애·정형식 재판관은 반대 의견(합헌)을 냈다. 이들은 "사실 적시 비방행위가 형법상 명예훼손죄로만 처벌되는 경우, 네거티브 방식의 선거운동이 더욱 활성화되고 선거과정이 혼탁해질 우려가 적지 않다"며 "공직선거법의 다른 조항만으로는 (예비 후보자 등에 대한) 사생활 보호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예비후보자 등에 대한 비방죄 조항은 즉시 무효가 됐다. 이에 따라 과거 합헌 결정이 있던 2013년 6월 27일 이후 해당 조항에 근거를 두고 처벌받은 자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