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안전교육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2013년 비전문취업비자(E9)로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방글라데시 국적의 A(38)씨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경기 안성, 이천, 평택 등 남부권의 중대형 산업체 공장 여러 곳에서 일해 온 지난 10여 년간 A씨는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에게 '안전교육'이나 '작업장 위험고지'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2021년 이동장치 제조공장에서 결국 그는 결국 건강을 잃었다. 당시 A씨는 그라인더로 금속 이동장치를 깎는 작업에 투입됐다. 수시로 화학물질(염산 등)을 뿌리며 그라인더를 돌렸다. 화약약품에 금속분진까지 날려 숨이 막혔지만 회사 측은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안전교육은 없었다. 기침이 심해져 방진마스크를 달라고 요청하면 회사 측은 늘 “괜찮다”고 넘어갔다. 결국 그는 8개월 만에 급성 간질성폐질환 진단을 받았고 한 달 뒤 병원에서 폐 수술까지 받아 폐 기능의 40%를 잃었다. 이전 다른 공정에선 작업 중 대형 철제 부품에 발등이 깔려 다치기도 했다. 그는 2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공장에 직원 80명이 있었는데 철근을 깎거나 화학약품 처리 등은 20여 명의 외국인이 도맡아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급성 간질성폐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보험(요양급여)을 신청했으나 '불가’ 판정을 받았다.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외국인 노동자 18명 등 23명이 숨진 화성시 리튬 전지공장 아리셀 화재참사에 대해서 그는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 역시 아리셀 외국인 노동차들처럼 인력업체를 통해 건설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A씨는 “아리셀 공장 노동자도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것 같다”며 “소방대피훈련이라도 했으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실상 무방비로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는 흔하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에 따르면 네팔 출신 B(35)씨는 2018년 경기북부의 가죽염색공장에서 일했는데 취업 초기부터 6년을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자신이 다루는 맹독성 화학약품에 대한 위험성도 듣지 못했다. 몸에 이상징후를 느껴 얼마전 이직했다. 통계청,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 상주인구는 150만 명, 취업자는 100만 명에 달하는데 중 한 해 80여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산업현장에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안전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업장 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안전교육 현황과 관련한 통계조차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은 정규직 및 일용근로자 채용 시 반드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됐으나,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서류만 맞춰 놓으면 감독기관에서도 문제 삼지 않기에 사업주는 굳이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을 상대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 교육하지 않는 것”이라며 감독 강화 필요성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