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강국 되려면 스타트업 지원하라" 양자컴퓨터 석학 마틴 로틀러 박사 인터뷰

입력
2024.06.27 14:27

"한국은 세계 5위의 양자 컴퓨터 투자국입니다. 한국 정부의 투자 확대는 긍정적이지만 양자 컴퓨터 강국이 되려면 교육을 늘리고 신생기업(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에서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양자 컴퓨터 석학인 마틴 로틀러 박사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25년간 양자 컴퓨터의 핵심 기술을 연구한 그는 110개 이상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NEC 미국 연구소를 거쳐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지난 3월까지 양자 컴퓨팅 개발팀을 이끈 전문가다. 이후 김정상 박사와 크리스토퍼 먼로 박사가 미국에서 설립한 양자 컴퓨터 개발업체 아이온큐의 애플리케이션 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로틀러 박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경기 일산의 킨텍스에서 열린 '퀀텀코리아 2024' 행사 참석차 방한했다. 양자 과학 분야의 세계 석학들이 모인 이번 행사에 참석한 그를 한국일보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양자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 경우의 수를 토대로 계산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0과 1이 겹치는 중첩까지 계산할 수 있어 기존 컴퓨터를 능가하는 연산 능력을 지녔다. 덕분에 슈퍼 컴퓨터가 1만 년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5분 안에 해결할 수 있어 꿈의 컴퓨터로 꼽힌다. 특히 인공지능(AI)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양자 컴퓨터 개발이 급선무다. 그래서 IBM, MS, 구글 등 세계적 기업들이 양자 컴퓨터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는 핵심인 양자가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극저온을 유지해야 해서 거대한 냉각 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온큐는 냉각시설 없이 상온에서도 작동하는 '이온트랩'이라는 획기적인 중앙처리장치(CPU)를 개발해 양자 컴퓨터에 적용했다.

이를 확대하기 위해 아이온큐는 최근 미국에서 최초로 양자 컴퓨터 생산시설을 워싱턴주에 설립했다. "기업에 판매하는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미국 내 유일한 시설입니다. 구체적 생산 능력을 밝힐 수 없지만 10여 대 이상 만들 수 있어요."

워싱턴주에 생산시설을 만든 이유는 지역 생태계 때문이다. "MS 아마존 구글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과 보잉 같은 제조업체, 미국 에너지부의 북태평양 국립연구소(PNLL)가 가까이 있어요. 덕분에 컴퓨터공학부터 기계공학, 마케팅 전문가 등 다양한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이 지역을 거대한 혁신센터로 봐요."

이를 기반으로 성능을 끌어올린 새로운 양자 컴퓨터를 연내 선보인다. 현재 아이온큐는 '하모니', '아리아', '포르테' 등 3가지 양자 컴퓨터를 내놓았다. "지난해 선보인 포르테의 성능은 36큐비트(양자 컴퓨터의 성능 표시 단위)죠. 올해 새 기술을 도입한 '포르테 엔터프라이즈'는 64큐비트가 목표여서 생성형 AI, 물리학, 화학,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어요. 이보다 연산 능력이 뛰어난 '템포'까지 18개월 안에 개발을 끝내는 것이 목표죠. 여러 개 프로세서를 장착한 멀티프로세서 시스템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개발해요."

이를 통해 주가 하락의 우려를 불식시킬 계획이다. 아이온큐는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 국내 투자자들도 관심이 많은 아이온큐 주식은 주가가 2021년 35달러에서 26일 현재 7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1분기 매출이 76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7% 늘었지만 여전히 적자다. "양자 컴퓨터 업체 중 제품 개발 일정을 공개하는 곳은 아이온큐가 유일해요. 달성 의지가 확실하기 때문이죠. 다른 기업은 개발 일정을 공개하지 않고 의미있는 수치가 나오면 깜짝 발표를 해요.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 기업과 꾸준히 협업하고 있어요."

현대자동차는 2021년 아이온큐에 72억 원을 투자했다. "현대차는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 장애물 탐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또 양자 컴퓨터로 전기차용 배터리를 설계하고 화학적 반응을 모의 실험하죠."

로틀러 박사는 AI 시대에 양자 컴퓨터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본다. "양자 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앞으로 한국은 양자 컴퓨팅이 발전할 수 있는 유망한 나라여서 한국 학생들에게 양자 컴퓨팅을 교육하기 위한 아이온큐의 전문 인력이 투입될 것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