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족 돈 빼돌리면 처벌... 친족상도례 70년 만에 대수술

입력
2024.06.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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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결정
"획일적 형 면제, 피해자에게 불합리"

가까운 가족(8촌 이내 친족·4촌 이내 인척·배우자)을 대상으로 재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하지 않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를 규정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제정 71년 만이다. 가족 간 재산 다툼을 형사처벌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취지에서 제정됐지만, 가족 개념이 축소된 지 오래인데도 일정 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무조건 형을 면제하는 건 피해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 헌재 판단이다.

헌재는 27일 형법 328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서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헌법불합치(위헌으로 혼란이 예상될 경우 한시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것) 결정을 내렸다. 328조 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 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하지 않는 제도다. 헌재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2025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을 갖는다.


헌재는 친족상도례를 전면 폐지하는 건 옳지 않으나 대폭 수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제적으로 결합됐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족 구성원 간 처벌은 어렵지만, 예외 없이 무조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건 피해자 입장에서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에 대해 ①형을 면제받는 적용 대상이 너무 넓고 ②재산 범죄 규모가 클 경우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한 피해 회복이 어렵고 ③피해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은 이런 사정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법관으로 하여금 형 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해, 대부분 사안에서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설령 예외적으로 기소되더라도 '형의 면제'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재판에서 피해자의 형벌권 행사 요구는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국의 친족상도례와 비교해 한국의 형 면제 범위가 과도하게 넓은 점도 고려됐다. 한국은 절도·횡령·배임 등 재산범죄에서 △배우자·직계혈족·동거친족·동거가족 및 위 사람들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하고 △그 외 친족들에 대해선 고소가 있어야만 기소가 가능(친고죄)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친족상도례 특례를 운용하는 국가로 꼽혀왔다.

헌재는 위헌 요소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법 개정 방향을 정하지는 않았다. "위헌성을 제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회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을 바꿔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다만 헌재는 비동거 가족인 경우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를 해야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형법 328조 2항에 대해선 합헌 결정을 내렸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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