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저출생의 늪에 빠졌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2명까지 떨어졌다. 매년 수십조 원을 쏟아부었어도 밑 빠진 독처럼 출산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전직하 중이다.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19일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저출생 정책을 총괄하는 위원회에 주형환(63) 부위원장이 취임한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시절 얻은 '불도저'란 별명은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주 부위원장은 "정책은 수요자가 평가하는 것"이라면서도 "미진하지만 진정성을 갖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좋은 일자리 창출과 수도권 집중 완화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어렵겠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책이 여전히 방대하고, 백화점식으로 보인다는 반응도 있다.
"국민 의견을 수렴해 정책의 큰 틀을 전환했다. 저출생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는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문제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이 가장 아파하고, 국내외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일·가정 양립을 최우선 순위로 끌어올린 것은 큰 변화다. 재원 배분 측면에서 이전 대책들은 87.2%가 양육이었고, 일·가정 양립은 8.5%에 불과했다. 앞으로는 확대하거나 새로 도입하는 재원의 80%를 일‧가정 양립에 집중적으로 투입한다."
-올해 2월 13일 취임 이후 4개월 만에 내놓은 저출생 대책,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개인적으로 '현재의 저출생 추세가 어떤 식으로든 반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로 임했다. 취임 이후 정책 공급자를 제외하고 인구·저출생 전문가, 정책 수요자 등을 150여 차례 만났다. 인원으로 따지면 2,000명 정도 된다. 또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대국민 정책 공모전까지 진행했다. 최종본을 발표하기까지 87회의 수정·보완도 거쳤다. 그래도 평가는 정책 수요자들이 하는 것이다. 저출생 추세 반전이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고,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 1.0명 회복이 목표다. 특단의 한 방이 없다고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저출생 문제는 단발성 정책이나 하나의 방안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번 대책과 관련해 새로 투입하는 재정 규모는.
"아직은 예산 편성 중이지만 국비와 지방비, 지방교육재정, 세제 지원 등을 합치면 대략 4조 원 플러스 알파(α)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 250만 원까지 인상 등은 재정당국과 협의가 끝났다. 지금까지는 육아휴직 기간 중 대체인력 고용 시 중소기업에 지원이 없었는데, 이번에 지원 대상에 포함해 120만 원을 지급한다. 지자체도 일·가정 양립이 중요하기 때문에 추가로 지원할 여지가 있다."
-결혼이 전제된 대책인데, 결혼을 안 하려는 이들에게 통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우리나라는 비혼 출산율이 2.5% 정도로 매우 낮다. 저출생 해결을 위해 결혼에 초점을 맞추는 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아이를 낳으려는 가정에는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이미 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혜택도 확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잡았다. 소득이라든가 자산 기준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낳고 기를 때 금전적 부담이나 기회비용이 확실히 줄어든다는 것을 미혼 남녀가 체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가정 양립에 집중하자는 결정은 누가 내렸나.
"전문가와 정책 수요자들의 판단이다. 그렇기에 일·가정 양립을 최우선으로 지원하는 쪽으로 과감하게 선회할 수 있었다. 꼭 필요할 때 눈치 보지 않고, 소득 걱정 없이 육아휴직 등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되 여건이 녹록지 않은 중소기업의 부담은 정부가 덜어 줘야 한다. 또한 정책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사회 인식 변화다. 아무리 애를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도 '왜 낳아야 하느냐'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종교계, 학계, 언론계 등과 함께 사회적 인식 변화에 나서는 이유다."
-일·가정 양립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지금까지는 양육에 재원이 쏠렸나.
"그때는 내가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양육 쪽 현금 지원이 손쉬웠을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저출생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제는 미혼이 증가하는 시대 변화도 어느 정도 감안을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방향 전환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책을 만들 때 가장 역점을 뒀던 점도 '과거 대책이 왜 실패했는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출생 대책이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저출생의 직접적인 원인에 제대로 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했다고 본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급속도로 변했는데 거기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일·가정 양립과 양육 환경 조성의 가장 큰 실천 주체인 기업과 지자체의 동참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또한 좋은 일자리 부족이나 수도권 집중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번 대책의 차이점은 구조적인 문제의 중요성을 분명히 밝혔고, 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접 다루겠다고 한 것이다."
-수십 년간 누적된 구조적인 문제, 당장 해답이 나올 수 있나.
"수도권 집중 완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니까 거기 들어가기 위해 좋은 학교를 졸업해야 되고, 좋은 학교를 가려니 사교육에 의존한다. 좋은 일자리와 학교가 몰린 수도권은 집값이 더 뛰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경쟁 압력이 너무 심해졌다. 수도권 집중 억제, 청년층의 좋은 일자리 창출, 공교육 내실화 등은 계속 범부처적으로 방안을 강구해 대책을 만들겠다."
-각 부처와의 정책 조율에 어려움은 없었나.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관들에게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저출생 극복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때보다 부처들의 도움을 얻기가 용이한 환경이었다. 재정당국은 세수 전망이 좋지 않은데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지방행정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는 저출생 쪽에 재원이 더 가도록 교부세 배분 기준을 바꿨다. 자발적으로 과감한 저출생 정책을 제안한 부처도 있었다."
-중책을 맡아 첫 대책을 내놓은 소회는.
"33년간 공무원을 하는 동안 '내가 사는 세상보다 우리 애들이 사는 세상이 뭐라도 나은 세상이 돼야 한다'가 기본 모토였다. 공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1997년 외환위기가 국가의 존립을 흔들 정도의 비상사태였고, 지금의 저출생 문제가 또 그렇다. 부위원장직을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지만 누군가는 진정성을 갖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나. 미력이나마 도움이 될까 했는데, 와서 보니까 너무 복합적이고 광범위하다. 정말 어렵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