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제목 '수옥'은 돌아가신 어머니 이름"...눈물과 울음 탐구하는 시인 박소란

입력
2024.06.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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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시인 박소란, 3년 만 새 시집 ‘수옥’
돌아가신 어머니 이름 제목에 붙여
“조금 더 바깥 풍경 보려고 노력”

“눈물이 가진 가능성, 울음 안에 깃든 삶의 빛”을 들여다보려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는 시인, 박소란(43)의 새 시집 ‘수옥’이 나왔다. “내 시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물 수(水)에 구슬 옥(玉)을 써야지 생각했다”는 시인의 아주 오래된 바람이 이뤄진 시집은 그의 말 그대로 물기가 축축하게 배어있다.

박 시인은 한국일보에 “첫 시집(‘심장에 가까운 말’·2015)에서부터 ‘없다’에서 ‘있다’로 점차 오고 싶었다”며 “이를 위해 소중하게 생각한 '눈물'이나 '울음'에서 가능성을 보고 싶다고 여기면서 쓰고 준비한 시집”이라고 전했다. 그렇기에 죽음에서 삶의 과정으로 나아가면서 불가피한 불안과 절망, 슬픔을 외면해 버리거나 다독이지 말고 오히려 푹 젖어 울어버리라고 그의 시는 말한다. 그 눈물은 삶의 재료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눈물이라는 재료를 수집해 접고 오리고 붙이는 데 긴긴 하루를 쓰는 사람도 있겠지”('공작')

“생활인으로서의 감각, 시에서 드러났으면”

시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시인이 말한 병과 간병의 풍경이 드리워져 있다. ‘나의 병원’이나 ‘간병’ ‘병중에’ 같은 제목의 시뿐 아니라 다른 시 곳곳에서 “병과 싸우는 한 사람과 엉터리 심판 같은 불행을 번갈아 흘깃”거리며 “멈출 도리가 없다 / 병이 있다는 사실을”이라고 중얼거린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간병인이나 보호자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게 됐다”는 시인은 아버지의 병환과 그로 인한 일상을 곡진하게 풀어놓는다. “그 속에 대학병원 흰 복도가 있고 나의 그림자가 있다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개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 늘어진 화살표는 장례식장이 지척이라고”(‘나의 병원’)

시집 ‘수옥’에는 표제작이 없다. 대신 ‘물음들’이라는 시에 “물 수(水) 구슬 옥(玉) / 아직 살아 있는 / 이것은 사람의 이름, 꾹꾹 눌러써야지”라는 문장이 있다. 박 시인은 “(수옥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함이기도 해서 오랫동안 담고 있었다”면서 “눈물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의 결과이기 때문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인 등단 15년 차..."여전히 계속 어리둥절합니다"

사실 이 시집의 시가 모두 수옥이다. 둥근 물방울과도 같은 사랑이 흐르고 번져나가는 박 시인의 시는 눈물이나 울음뿐 아니라 부정적인 개념어마저 그의 세계로 포섭한다. “그리운 사람은 악몽 속에서도 산다”라거나 “썩는다 / 가짜는 썩지 않는다”고 여기는 시적 화자는 불행의 편에서 그를 응원하기도 한다. “불행, 힘내, / 나는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 속으로만 웅얼거린다 거기 누군가 무심코 응, 답할 때까지”(‘불행한 일’) 하염없이 슬픔과 마주하지만 거기에 머무르기보다는 물기를 짜내 언젠가는 “잔털 보송한 마음들이 고물고물 자라”리라는 믿음이다.

“화자가 꿈이나 폐쇄적인 자기 안에 갇히거나 사로잡혀 있지 않고 생활인으로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제 시에서 더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박 시인은 내밀한 고백을 통해 결국 바깥의 세계에도 시선을 돌린다. “세상의 골목은 왜 늘 어두운지 // 떨며 불 밝힌 창문들, 저 방에는 누가 사는지 / 살지 않는지”(‘당신의 골목)를 물으면서. 다정한 말 한마디도, 긍정도, 낙관도 없는 그의 시에서 읽히는 위로는 이 때문이다. 아주 오래 한곳을 응시한 시인의 시선은 자기 체험을 넘어 보편적인 슬픔과 상실의 정서를 길어낸다.

박 시인 역시 “세 번째 시집(‘있다’·2021)을 내고 난 이후 다음 시집은 사는 이야기를 더 하고 조금 더 바깥 풍경을 많이 보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울고 있나, 이런 것들을 좀 보려고 애를 썼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등단 15년 차이지만 “계속 어리둥절하고 있다”는 박 시인이다. 3, 4년마다 한 권씩 시집을 내온 그의 속도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언제 새 시집이 나오는지를 손꼽게 되는 시인이지만, 박 시인의 시를 사탕처럼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다 보면 그 기다림마저도 아끼게 된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