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의 올림픽

입력
2024.06.28 16:50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복지국가의 대명사 스웨덴이 성평등 국가 1위가 된 데는 정치적 결단에 힘입은 바 크다. 사회민주당은 1994년 총선에서 집권 전략으로 자당의 국회의원 후보를 남녀 절반씩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크고 작은 여러 정당이 사민당 뒤를 따랐음은 물론이다. 이런 스웨덴도 40년 전까진 여성의 사회진출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1980년대 직장에서의 남녀평등법 제정 등으로 부부의 장기 휴직이 보편화되는 성과가 나왔다. 성평등의 비약적 발전은 정치와 제도가 이끌었다.

□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 후보 추천 시 여성을 30% 이상 하라는 공직선거법 권고 조항이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선 여성 당선자 비율이 20%밖에 안 된다. 그나마 역대 최다다. 특히 거대양당의 지역구 후보 여성 비율은 10%대에 머물렀다. 북유럽 선진국까지 가기엔 족탈불급이다.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고 술도 큰 사발에 돌려 먹는 바이킹 문화와 남녀유별과 장유유서를 따지는 유교 문화의 차이, 여성 편견에서 비롯됐는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인구 비례성이나 여권 신장의 큰 흐름을 앞으로 정치가 외면하긴 어렵다.

□ 7월 26일 개막하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 남녀 참가 선수 숫자가 같다고 한다. 참가 선수 1만500명 가운데 여성이 절반인 5,250명이다. 128년 올림픽 역사상 첫 성비 균형이다. 참가 선수 평균연령이 다소 높아짐에 따라 엄마 선수도 늘었다. 이에 따라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어린이집도 선수촌 내에 마련됐다. 엄마가 자녀의 열띤 응원에 힘입어 더 큰 힘을 받게 될지, 아니면 신경이 분산돼 경기 몰입도가 떨어질지 그 결과가 사뭇 관심이다.

□ 근대올림픽 태동기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말이 근대올림픽이지 19세기 말 여성에 대한 인식은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렀다. 최초의 근대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올림픽에선 여성 운동선수의 참가 자체가 금지됐다.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한 라디오방송에서 "여성의 몫은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걸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세상의 큰 변화에 놀랄 쿠베르탱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정진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