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인 줄 알았는데 중국 트로이 목마?… 온라인 도박장에 골머리 앓는 필리핀

입력
2024.06.26 04:30
두테르테 정권, POGO 면허 발급 후유증
도박 면허로 작년 1,200억 원 세수 확보
범죄 온상 전락... 중국 영향력 확대 우려

필리핀 정부가 현지에서 성행하는 온라인 도박업체(POGO)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 효과를 기대하며 산업을 허용했지만, 사기와 인신매매 등 범죄 온상으로 전락한 탓이다. 중국 당국 연루 의혹도 커지면서 자칫 중국이 필리핀 지하경제를 좌우하게 만드는 ‘트로이 목마’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2016년 이후 대거 늘어난 온라인 도박장

25일 필리핀 일간 말라야인사이트 등에 따르면 상원 여성·아동·성평등 위원회는 26일 정부 산하 자금세탁방지협의회와 함께 불법 POGO 운영 청문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적발한 밤반시(市) 대형 불법 POGO 자금 출처와 범죄 연관성을 따져본다는 계획이다.

셔르윈 가찰리안 상원의원은 “해당 POGO는 10헥타르 부지에 건물 37개를 보유하고 있다. 시설 건설에 61억 페소(약 1,440억 원)가 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금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POGO는 필리핀에서 운영되는 온라인 카지노다. 딜러가 필리핀에 위치한 부스에서 게임을 시작하면, 고객은 수천㎞ 떨어진 지역에서 PC로 웹캠을 통해 돈을 거는 구조다. 대다수 손님은 중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에 온라인 도박이 성행한 것은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이후다. 당시 두테르테 대통령은 POGO 면허 발급 권한을 필리핀오락게임공사에 위임하고, 측근을 공사 회장 직에 앉혔다. 공사는 이후 60여 곳에 면허를 내줬다.

정부가 도박 사업을 용인한 것은 고용과 세수 기여도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필리핀 정부가 면허 발급 관련 규제로 벌어들인 수입은 51억 페소(약 1,205억 원)에 달한다. 산업 종사자에게도 적지 않은 세금(약 240억 페소·2018년 기준)을 걷어들인다. 운영 과정에서 중국 투자금도 대거 들어왔다.

"중국 기습 침투에 악용될 수 있어"

그러나 정부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 업체도 덩달아 급증했다. 현지 매체 인콰이어러는 “현재 면허증을 받은 곳은 약 43곳뿐이고 나머지 250여 곳은 불법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음지에서 자금세탁, 성매매, 인신매매, 로맨스 스캠(온라인에서 이성인 척 접근해 돈을 뜯는 사기) 등 범죄를 벌인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일자리를 주선한다며 저개발 국가 청년들을 데려온 뒤 사기 행각에 동원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폭행하는 식이다.

불법 POGO 운영에 중국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 중순 대통령 직속 반조직범죄위원회(PAOCC)가 팜팡가주 포락시에서 급습한 업장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 군복 여러 벌이 발견됐다.

출신 배경이나 과거 행적이 묘연해 ‘중국 스파이’ 의심을 받고 있는 앨리스 궈 밤반 전 시장 역시 불법 POGO와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윈스턴 카시오 반조직범죄위 대변인은 “궈 전 시장이 밤반시와 포락시 POGO 허브를 담당하는 범죄 조직 일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중국 자본이 투입된 불법 POGO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커진다.

군사안보 전문가 체스터 카발자 필리핀대 교수는 “중국이 (필리핀 내) 중요 시설에 대한 기습 공격을 수행하는데 활용할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길베르토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은 “온라인 카지노로 가장한 범죄 조직이 (필리핀의) 재정을 약화시키고 사회를 부패시키고 있다”며 폐쇄를 주장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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