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가족이 늘어났습니다. 재작년 12월 은퇴 안내견 ‘새롬이’를 입양해 기존의 반려견 5마리(토리, 나래, 마리, 써니, 올리)와 반려묘 5마리(아깽이, 나비, 노랑이, 키위, 하양이)까지 총 11마리와 함께 살았는데, 이번에 ‘중앙아시아의 셰퍼드’로 부리는 알라바이 두 마리가 추가되면서 이젠 13마리의 반려동물 보호자가 된 셈이죠.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 심경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만, 최근 윤 대통령 부부가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과정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정상으로부터 선물 받은 ‘알라바이 듀오’의 관점에서 편지 형식의 글을 풀어봤습니다. 물론 허구지만, 현재까지 대통령실이 발표한 내용 등을 토대로 이들에게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견생 여정'을 반영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알라바이들은 사실 국내 반려견들의 삶의 질 평균치에 비하자면 ‘견생 상팔자’에 속할 거란 사실을 누구도 쉽게 부정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국민적 관심 속에 철저한 관리를 받아가며 나름대로 위생적이고 쾌적한 공간이 제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삼 마당에서만 살아온 저의 고향집 진돗개에게 미안함이 밀려오네요.
투르크메니스탄은 국견 알라바이 선물로 ‘동물외교’ 성과를 어느 정도 낸 것 같습니다. 자국 존재감을 우리 국민에게 알리고, 자연히 알라바이 품종의 우수함도 홍보가 된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알라바이를 통해 국가 간 우호 관계를 끌어올린 점 또한 큰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는 알라바이를 선물 받은 뒤 “투르크메니스탄의 보물을 선물 받아 매우 영광”이라며 “양국 협력의 징표로 소중히 키워나가고 동물 보호 강화를 위해 더 힘쓰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이처럼 동물외교는 정상 간 경직된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 다양한 스토리를 남길 수 있어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동물외교는 중국의 ‘판다외교’입니다. 1972년 중국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판다를 선물한 이후 중국 외교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멸종위기의 희귀동물같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동물을 상대국에 ‘외교 특사’로 파견했을 때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 두 나라의 가교 역할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점도 동물외교의 순기능이죠.
우리나라에선 ‘따오기 외교’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힙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적 멸종위기였던 따오기 한 쌍을 기증 받았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국내에 들여와 번식에 성공한 것입니다. 우포늪이 있는 경남 창녕군에 ‘복원센터’를 세우고 집중 관리하는 등 철저한 후속 관리를 이어 간 결과입니다. 창녕군청 우포생태따오기과 관계자는 21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복원센터에만 약 240마리의 따오기가 있다"며 "2008년 중국에서 들여 온 두 마리 역시 복원센터에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자연방사 따오기만 해도 340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명실상부한 ‘따오기 천국’으로 거듭난 셈이죠.
반면 우리 정상들이 ‘선물’ 받은 동물들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94년 중국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한중 수교 2주년을 기념해 ‘밍밍’과 ‘리리’라는 이름의 판다를 임대해 줬는데,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지며 관리비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몽골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말을 선물했는데,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각각 검역 문제와 운송 과정,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국내로 들여오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선물 거절”이라며 공세를 펴기도 했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 ‘우리’와 ‘두리’,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곰이’와 ‘송강이’는 남북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의 퇴임을 전후로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 문제로 정쟁이 펼쳐졌습니다. ‘대통령 기록물’ 신분이 된 곰이와 송강이에 대한 관리 책임 논란이 일었는데, 법령 개정으로 동식물의 경우 전직 대통령이 위탁을 받아 양육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음에도 결국 곰이와 송강이는 양산 자택을 떠나 동물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파양 논란’이 불거졌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외교 현장에서 동물이 꼭 우호와 친교의 목적으로만 활용된 건 아닙니다. 2007년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남부 휴양도시 소치에서 열린 독일과 정상회담 자리에 래브라도 리트리버 품종의 ‘코니’를 풀어놨는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곁눈질하는 사진이 공개돼 국제적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개에 물렸던 메르켈 총리의 트라우마를 알고 ‘기선제압’을 하려고 일부러 풀어놨을 거라는 해석이 쏟아졌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 푸틴 대통령은 “사과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릇된 동물외교 사례로 길이 남은 사건이죠.
동물외교에 뚜렷한 명암이 존재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동물외교를 “쉬워 보이지만 갈수록 셈법이 복잡해지는 외교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주기도 받기도 쉽고, 멋진 그림도 나오지만, 경우에 따라 서로에게 곤란한 일들도 많이 발생하는 외교 수단이라는 것이죠. 이 교수는 “동물을 받았다가 두 나라의 관계가 안 좋아지면 다시 보내 버린다고 하거나, 선물로 받은 동물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죽게 되면 미묘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등의 사회변화로, 과거엔 관행으로 여겨졌던 동물외교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아졌다”고 덧붙였습니다.
가까운 사례로 중국의 판다외교 상징물인 자이언트 판다 아이바오와 러바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푸바오와 루이바오, 후이바오가 우리 국민의 큰 사랑을 받아왔지만, 한편에선 생활 공간이 너무 좁다거나 관람객에게 오랜 시간 노출돼 스트레스가 심할 것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공존해 왔던 것도 이러한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동물외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늘고 있습니다. 아무리 국가 정상 간 선물이더라도, 동물을 물건처럼 주고받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안도 충분합니다. 오스트리아는 2021년 6월 국빈 방문한 문 전 대통령을 수도 빈의 대표 동물원인 쇤브룬 동물원에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후원자로 예우했습니다. 동물을 꼭 한국으로 데려오지 않아도, 동물 보호라는 뜻을 함께하며 양국 우호 관계를 다진 사례입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감응력이 있는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게 동물보호, 생명 감수성에 반하는 일이라는 걸 지도자들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동물외교를 추진하는 국가 지도자들이 ‘이 동물이 어디 있을 때 가장 좋을지, (옮긴다면) 누구에게 가장 이익이 될지’를 함께 고려할 때”라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