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50도... 6월 덮친 가마솥 폭염에 지구촌 무방비로 당했다

입력
2024.06.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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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덮친 때 이른 폭염
뉴델리 55년 만 최고 기온
하지 성지순례 900명 사망
"온난화 넘어선 지구 이상화"

섭씨 51.8도. 최근 이슬람권 정기 성지순례(하지)가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메카가 찍은 기온이다. 6월이라 믿기 힘든 가마솥 폭염에 결국 인간은 무릎을 꿇었다. 이곳에서만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40~50도를 웃도는 때 이른 극한 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은 벌써 7~8월이 두렵다.

인도 열사병으로 110명 사망

지구촌이 가마솥더위로 신음하고 있다. 계절상 한여름도 아닌데 기온이 40도를 넘기는 건 예사다. 인도는 이미 5월부터 한낮 기온이 40도 안팎을 오갔다. 지난달 17일 폭염이 본격화한 이후 낮 최고 기온은 45도를 웃돌고 있다.

델리의 대형병원 중 한 곳인 람 마노할 로이아 병원은 5월 말 열사병 클리닉을 개설했다고 19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이곳에 도착하는 열사병 환자들은 물 온도가 0~5도인 세라믹 욕조에 먼저 몸을 담근 뒤 치료 병실로 이동한다. 아제이 차우한 열사병 클리닉 원장은 "열사병 사망자를 본 건 이 병원에서 일한 지 13년 만에 처음"이라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폭염"이라고 말했다.

20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약 석 달 사이 인도 전역에서 열사병 증세로 사망한 사람은 110명에 달했다. 열사병 증세로 입원한 환자 수도 4만여 명이었다. 수도 뉴델리는 지난 18일 밤 기온이 35.2도로 55년 만에 가장 높았다.


52도 폭염 '하지' 사망자 900명

5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엿새간 치러진 이슬람 최대 종교 행사 하지에선 마지막 날인 19일 기준 9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전 세계에서 180만 명의 무슬림이 사우디 메카를 찾았는데, 지난 17일 낮 기온이 52도에 육박하는 등 행사 내내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사인은 대부분 온열질환이었다. 사우디 경찰이 물을 나눠주고 물을 뿌리는 선풍기를 곳곳에 설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순례객 윌라예트 무스타파는 로이터에 "너무 가혹한 열기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쿠웨이트도 19일 기온이 50도까지 치솟아 전력 수요가 폭증한 결과 일부 지역의 전기 공급이 일시적으로 차단되기도 했다.

미국도 수십 년 만에 닥친 폭염에 속수무책이다. 미국 중북부와 동북부에 형성된 '열돔(Heat Dome)'이 지표면을 달군 결과 이 지역 일대 수은주를 끌어올리고 있다. 메인주(州)를 비롯해 버몬트주, 뉴햄프셔주 등 동북부 지역은 여름철에도 상대적으로 덥지 않은 곳으로 꼽혔지만, 최근 36도를 웃돌며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체감온도는 38도를 넘겼다. 미국 기상청은 이번 주까지 이 지역 일대에 평년보다 10도가량 높은 기온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구촌 '극한 날씨' 시대 진입"

기후학자들은 지구촌이 '극한 날씨'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기후과학자 캐서린 헤이호 텍사스공과대 교수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용어가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다"며 "날씨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지구 이상화(global weirding)'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 붕괴가 세계의 폭염 수준을 더욱 가차 없고 강렬하게 만들고 있다"고 평했다.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