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 땡볕을 푸틴과 나란히 걸었다...김정은 '산책 외교' 집착 이유는?[북러정상회담]

입력
2024.06.19 21:4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9일 만남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 중 하나는 정식 회담 후 이뤄진 산책 대화였다. 김 위원장이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을 때도 선보인 방식이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평양 금수산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후 산책과 차담을 겸한 일대일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이날 평양의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관측되면서 일정 변동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예정대로 진행됐다. 앞서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 보좌관은 산책 회담 일정을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산책 회담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즐겨 활용하는 방식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과 함께한 '도보다리 산책 회담'이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같은 해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1분 산책'을 했다. 이듬해 6월 20~21일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찾았을 때도 금수산영빈관 경내 산책 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의 산책 회담이 부각되는 것은 북한의 폐쇄적인 시스템 때문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주요국 정상들과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자체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책 회담은 김 위원장 말고도 각국 정상들이 친밀감을 강조하고 내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당시 대통령실 역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산책을 비롯한 별도 대화 시간을 가졌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정상 국가' 면모를 과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 때의 기억이 강하게 남았던 것 같다"며 "정상 간 우애를 다지고, 정상 국가를 지향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고 친밀감을 보여주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산책 회담의 결과가 곧장 유형의 성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앞서 산책 회담을 진행한 회담들 역시 지속적인 성과로 이어진 사례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과 협력 관계는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식어가다 끝내 불씨를 되살리지 못했다. 시진핑 주석과 회담 역시 대북 제재 해제 등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고, 식량 지원과 인적 교류 등 인도적 지원 역시 이듬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정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