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죽었는데 가해자 형 살고 나와도 20대" 유족 청원, 나흘 만에 5만명 동참

입력
2024.06.19 12:20
수사매뉴얼 개선 및 양형 가중
교제폭력처벌법 마련 등 요구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숨진 이른바 ‘거제 교제폭력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올린 국민동의청원이 나흘 만에 5만 명을 넘어 국회 상임위원회로 회부됐다.

19일 국회는 “지난 14일부터 동의를 받기 시작한 ‘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이 18일 오후 1시 41분 기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인 법제사법위원회와 관련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고 밝혔다. 소관위가 청원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채택하면 본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정부로 이송된다.

이번 청원은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매뉴얼의 전면적인 개선과 양형 가중, 교제폭력처벌법 마련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을 ‘거제 교제살인 사건 피해자의 엄마’로 소개한 청원인은 “20대 건장한 가해자는 술을 먹고 딸아이의 방으로 뛰어와 동의도 없이 문을 열고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던 딸아이 위에 올라타 잔혹하게 폭행을 가했다”며 “(딸이) 응급실을 간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 집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는가 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다니며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겠다’ 등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사흘간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조문도, 용서를 구하는 통화도 없었다”며 “분노를 당장 가해자에게 쏟아내고 싶지만 남은 아이들을 보며 엄중한 법의 심판을 달게 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에게 살인이 아닌 상대적으로 형량이 가벼운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된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청원인은 “국과수 부검 결과 딸은 가해자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상해치사, 주거침입, 스토킹으로만 기소됐다”면서 “형을 살고 나와도 가해자는 20대다. 합당한 벌을 받아 선례를 남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상해치사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지만 보통 4년에서 8년의 형량이 적용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청원인은 수사기관이 교제폭력을 쌍방폭행으로 단순 종결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딸이 가해자를 11번이나 신고했지만 경찰에서 번번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풀어줬고 가해자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딸에게 ‘이제는 주먹으로 맞는다’, ‘너 죽어도 내 잘못 아니래’라고 했다”며 “가해자를 11번이나 멀쩡히 풀어준 경찰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 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청원인의 딸인 A씨는 지난 4월 1일 오전 8시쯤 경남 거제에 있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전 남자친구인 B씨에게 폭행당해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고 치료 중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건 열흘 만에 숨졌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가 머리 손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고, 검찰은 지난달 30일 B씨를 상해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거제=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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