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휴전 압박과 자국 내 극우 세력의 연정 철회 협박을 동시에 받아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주요 결정을 내려온 전시 내각을 해체하면서 결국 중도 온건파와 결별하고, 극우파에 둘러싸이게 됐기 때문이다. 하마스와의 휴전·인질 석방 협상에는 먹구름이 짙게 꼈다.
17일(현지 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전날 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공식 해산됐지만 기존 초강경 일변도 정책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쟁 관련 현안 논의는 전시 내각 대신 소수가 참여하는 '특별 회의'에서 이뤄지고, 안보 내각이 최종 추인할 전망이다.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 등 주요 결정이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등 12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안보 내각 회의서 이뤄지게 된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지난 9일 중도 온건파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가 초강경 정책을 고수해 온 네타냐후 총리에 반발해 전시 내각 탈퇴를 선언한 이후 내각 해체는 시간문제였다.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최대 정적이다.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선 더 이상 중도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AP통신은 "전시 내각 해체는 네타냐후 총리를 휴전 협상에 열려 있는 중도 정치인들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라며 "전쟁에 대한 네타냐후 총리의 영향력은 강화되는 반면 휴전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세력의 전시 내각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각 해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다. 벤-그비르 장관,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등이 간츠 대표의 전시 내각 탈퇴 이후 그의 빈자리를 호시탐탐 노려왔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의도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네타냐후 총리가 이들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들이 이끄는 종교시온주의당이 연정에서 탈퇴할 경우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시 내각의 해체는 네타냐후 총리 개인의 정치생명에 타격을 입힐 공산이 크다. 전시 내각은 지난 8개월여 분열과 반목을 숨기진 못했지만 전쟁 국면에서 굵직굵직한 의사 결정을 책임져 왔다. 경험과 전략이 부재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때로는 책임을 전가하고, 비판을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돼준 셈이다.
뉴욕 주재 이스라엘총영사를 지낸 아론 핀카스는 영국 가디언 기고를 통해 "일이 잘못됐을 때 비난이 전시 내각을 향했다면 이제 그 화살은 한 방향(네타냐후 총리)으로만 향할 것"이라며 "전시 내각 해체는 정책에 영향은 미치지 않을 수 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정치적으로 훨씬 더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전시 내각 해산 소식에 17일 오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수천 명의 반(反)정부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NYT에 따르면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과 조기 총선 실시,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의 즉각 송환을 요구하며 총리 관저로 행진했다. 시위는 18일에도 연일 계속될 전망이다.
향후 휴전 협상도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하마스 무장대원 550여 명을 제거해 전투부대 절반을 무력화했다"며 "2주 안에 완전한 통제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고 이스라엘 예루살렘포스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