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 논의에 복병이 등장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재계를 달래기 위해 배임죄 폐지를 제안하면서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과 배임죄를 1 대 1 교환하는 식으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안이 오히려 복잡해졌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18일 학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이 원장이 14일 언급한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 패키지 처리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 원장은 당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추가로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를 함께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의 배임 소송이 빗발칠 것이란 재계의 비판을 수용해 주주와 재계의 균형의 추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상법 개정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적절치 못한 해결책이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상법 개정은 회사법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이를 배임죄 폐지와 맞바꾸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도 "상법 개정은 상법 개정이고, 배임죄가 너무 잘못 돼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고쳐야 할 문제"라며 "일괄적으로 큰 거래를 하듯 논의하는 것 맞지 않다"고 밝혔다.
배임죄 폐지 카드가 이 원장의 의도대로 재계의 반발을 달랠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배임죄 폐지 자체에 대한 방향에 대해 공감한다"면서도 "그렇다고 배임죄 폐지를 해줬다고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시키는 것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수당으로 상법 개정의 키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역시 배임죄 폐지에 부정적이다. 애초에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민주당에서 발의한 만큼 정부여당과 큰 이견이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배임죄 폐지와 묶이면서 법안 논의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상법 개정, 배임죄 폐지 모두 주무부처가 법무부인 상황에서 개정 권한이 없는 이 원장의 월권으로 혼란만 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전혀 상관없는 걸 교환하겠다고 해 논의를 왜곡시켰다"며 "아무 권한도 없는 금감원장이 법무부 장관이 할 걸 대신해 얘기하는 것 자체도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26일 상법 개정 관련 세미나에 참석, 다시 한번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세미나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 주관으로 열리는 만큼 재계의 입장을 충분히 듣겠다는 것이 이 원장의 입장이다. 앞서 12일 이 원장이 참석했던 지배구조 관련 세미나는 증권학회나 자본시장 관계자들 위주로 구성돼 상법 개정 당위성이 강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