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 빅게임이 임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 19일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2000년 이후 24년 만의 방북이다. 국제사회를 혼돈으로 내몬 대표적인 불량국가가 보란 듯이 뭉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할 재래식 무기를 원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기술을 전수받을 심산이다. 특히 북한은 러시아와 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계를 격상하고 싶어한다. 그럴 경우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북한 문제에 자동 개입할 수도 있다. 한미동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 정부가 감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신냉전의 대결구도와 맞물려 북러가 얼마나 밀착할지에 주변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푸틴 방북의 최대 관심사는 북러관계의 변화다. 특히 군사적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과 구소련은 1961년 조소동맹조약을 맺었다. 유사시 군사적으로 자동개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소련 해체 이후 1996년 조소동맹이 폐기되고 2000년 북러 우호친선 및 협력조약을 체결하면서 안보지원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외부 세력의 공격에 함께 맞서야 하는 한미동맹과 다른 점이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16일 연합뉴스TV에 나와 "군사 안보 측면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정보도 있다"고 밝혔다. 외교당국은 과거 조러조약으로 복귀하는 상황을 우려하며 러시아 측에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성윤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중국과 연대에 차질을 빚고 있는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 수준을 높이고 △러시아는 고급 군사기술 제공을 미루는 대신 군사동맹 강화로 북한을 달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러시아가 중국을 제치고 미국과 협상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러 군사동맹 회귀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안보지형에 치명타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러 동맹을 복원하면 양자 군사훈련을 넘어 방공망 통합에 나설 것"이라며 "이 경우 한반도 전역은 물론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정부 당국자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핵·미사일 관련 핵심 기술 이전이 레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장 실장도 앞서 인터뷰에서 "러시아 측에 일정한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성 소통을 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군사협력 자체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인데, 러시아가 이미 북한산 재래식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했지만 더 이상의 조치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극단적인 경우 한러 단교도 거론된다. 양국관계가 파탄으로 가는 셈이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심각하게 본다는 의미다. 외교·안보 관계부처는 이날 북러 군사협력 격상 제도화에 대응할 수 있는 조치를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러제재 확대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한러 군사협력 협정 효력정지 △주러대사 소환 등이 검토 대상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건 북러 군사협력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우리의 외교적 카드"라며 "신중하되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는 러시아가 한국과 등지면서 북한과 전면적인 군사협력을 도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또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추진잠수함을 비롯해 북한의 '국방 발전 5개년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고급 군사기술은 전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러시아도 한국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러는 군사협력 외에 대북 경제 제재를 무력화할 협력 방안을 모색할 전망이다.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이 단적인 예다. 러시아는 전쟁 피해 복구와 경제 재건에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하고 북한은 외화 벌이가 절실하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