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베테랑도 못 피한 감전 사고... "인력 부족에 2인 1조 유명무실"

입력
2024.06.17 15:23
서울교통공사 50대 직원, 지하철역 작업 중 숨져
동료 작업자 "사고 발생지, 줄곧 개선 요구한 곳"
인력 감축 기조에 전기 분야 4년간 60여 명 줄어


제37조(2인 이상의 전기 작업) 고압, 특별 고압 작업 및 위험이 예상되는 작업은 반드시 2인 이상 한 조가 되어 작업에 임하여야 한다.
서울교통공사 전기작업안전 내규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29년 경력 베테랑 노동자가 고압 전기 작업을 하다가 감전으로 숨진 사고와 관련해, '2인 1조' 작업 규정이 준수되지 못한 것이 사고 핵심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조는 현장 인력 감축 기조도 사고 배경으로 지목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가 발생했는데도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사과도 사죄도 하지 않은 것은 결국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후안무치한 태도"라며 "엄정한 사고원인 규명을 촉구하며 일하다 다치고 죽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숨진 공사 직원 이모(53)씨는 지난 9일 오전 1시 36분 연신내역 지하 1층 전기실에서 배전반 내 케이블 구분을 위해 색상 표시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하다 6,600볼트 고압 전압에 접촉해 변을 당했다. 사고 당시 동료 2명이 현장에 함께 있었으나, 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던 것으로 노조는 파악했다. 한 사람이 위험 작업을 하는 동안 짝을 이룬 노동자는 작업 상황을 관찰하고 유사시 긴급 대응을 하도록 하는 '2인 1조'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사고 발생 수년 전부터 현장 노동자들이 업무 위험성을 인지하고 설비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고도 밝혔다. 고인의 동료 작업자였던 장명곤씨는 "사고가 일어난 전기실은 노후 설비에 작업 공간도 협소한 구조라 동료들이 개선 요구를 줄곧 해왔던 곳"이라며 "그때마다 공사는 예산 탓을 하며 미루고 묵살하고 안전교육만으로 땜질해왔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전문가넷 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이번 사고는 작업자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위험을 초래하는 지시, 인력 감축으로 인한 인력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고 당시 이씨가 하던 색상 표시 작업은 기존 점검 업무에 더해 5월부터 규정 변경으로 추가된 일인데, 공사 본부가 최근에 자주 '(스티커) 부착 실적 보고'를 요구해 현장에서 압박감을 느끼던 상황이라고 노조는 주장했다. 아울러 전기 분야는 정년퇴직에 따른 결원 미보충 등으로 지난 4년 동안 현원이 60여 명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정확한 사고 발생 경위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해서는 서울고용노동청과 은평경찰서 등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공사 측은 "노조가 요구하는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은 구체적인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논의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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