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대선 패배 후 지지자들이 일으킨 '1·6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 이후 3년여 만에 의사당에 발을 들였다. 대선을 5개월 앞두고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을 잇따라 만나 '단합'을 강조하면서다. 반(反)트럼프 성향 인사까지 끌어안았다.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관련 유죄 평결을 받은 후 흔들리는 당내 기강 잡기에 나선 모습이다.
민주당 측은 "내란 선동자가 범죄 현장으로 돌아왔다"고 직격했다.
미국 CNN·ABC방송과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간) 워싱턴 의사당 인근 '캐피털 힐 클럽'에서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들과 조찬 회동을 한 뒤 전국공화당상원위원회에서 상원의원들을 만났다.
특히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2020년 이후 처음 만나 '주먹 인사'를 나눈 것은 이날 회동의 하이라이트였다. 매코널 원내대표가 2021년 1월 6일 발생한 폭동의 "도덕적 책임"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물은 이후 두 사람 관계는 냉랭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이날 만남으로) 두 사람 사이 얼음이 조금 녹아내렸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공화당 내 대표적 반트럼프 인사인 밋 롬니 상원의원(유타)도 동석했다.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원의원들에게 둘러싸여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그들과 1000%, 그들은 나와 1000% 함께 있다"며 "공화당은 매우 단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회동 분위기는 시종일관 따뜻했다고 전해졌다. 매코널 원내대표도 "긍정적 만남이었다"고 평했다. 다만 그는 기자회견 시 트럼프 전 대통령 옆에 섰던 의원 무리에는 끼지 않았다고 액시오스는 전했다.
이날 회동은 사실상 '트럼프 집권 2기' 신호탄을 방불케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선 캠프의 선거 캠페인 같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임신중지(낙태)와 이민, 세금, 우크라이나 지원 등 대선 쟁점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했다. 특히 임신중지 이슈를 선거 운동 과정서 다룰 때 주의를 당부했다고 CNN은 전했다.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이 헌법상 임신중지권을 폐기한 이후 4개월여 뒤 치러진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잃은 사실을 짚었다는 전언이다. 그는 강간, 근친상간, 산모 생명이 위험할 때 등 3가지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화당은 4차례 형사기소된 트럼프 지원 사격에 본격 나선 참이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주(州)법원에 형사기소됐을 때 사건을 연방법원으로 이관하는 입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ABC는 전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주 배심원단으로부터 받은 성추문 입막음 관련 유죄 평결을 염두에 둔 것이다. 재집권 시 '셀프 사면'을 위해서다. 대통령 사면권은 연방범죄에만 적용된다.
다만 여전히 미묘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ABC는 "모든 공화당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한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앞서 1·6 폭동 관련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투표에 찬성표를 던졌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메인)과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알래스카)은 이날 회동에 불참했다. 이들은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민주당은 경계 태세를 한껏 높였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내란 선동자가 범죄 현장으로 돌아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바이든 대선 캠프는 이날 경합주 등에서 1·6 폭동 당시 장면을 담은 30초 분량 광고를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