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성폭행 피해자 "잠깐 타올랐다 금방 꺼지지 않길"... 모금 진행

입력
2024.06.13 16:09
한국성폭력상담소 통해 의견 전해 
20년 지났지만 심리적·육체적 고통
피해자 "그럼에도 이겨내겠다" 다짐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자가 가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한 유튜버를 향해 "피해자 동의 없는 신상 노출과 영상 게재를 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죽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겨내도록 노력하겠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3일 서울 마포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밀양 사건 피해자 자매의 입장문을 공개했다. 피해자는 서면에서 먼저 "20년 전 이후로 영화나 TV에 (사건이) 나왔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잠깐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실 줄은 몰랐다"며 "저희를 잊지 않고 많은 시민들이 자기 일같이 화내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피해자는 여전히 심리적·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상담소에 따르면 피해자는 정식 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와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는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노력하겠다"며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며 "잊지 않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금방 꺼지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동의 없는 신상 노출 삼가라"

피해자는 밀양 사건 관련 유튜버들의 무분별한 신상 공개 등에 2차 피해도 우려했다. 그는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 및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좋겠다.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받게 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 '나락보관소'가 피해자 측과 신상 공개를 합의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피해자는 "남동생이 보낸 메일로 인해 오해가 있었지만 피해자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게 맞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와 직접 통화했다며 음성 파일과 판결문을 공개한 유튜버 '판슥'에 대해선 불쾌하다는 반응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정 상담소 소장은 "피해자가 지난해 11월 '고민 상담을 해준다'는 공지를 보고 판슥에게 연락한 적은 있지만 공론화라는 단어를 쓴 적도, 공론화를 바란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본인 인증을 위해 보낸 판결문 등에 대해서도 이후 삭제를 요청했으나 그대로 게시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관련 영상을 내려달라고 했다. 다만 피해자 측은 유튜버들에 대한 법적 대응 계획을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경찰, 검찰에 2차 가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상담소, 피해자 생계 지원 모금 진행

이미경 상담소 이사는 "엊그제 상담소 활동가들과 만난 피해자가 '저 많이 단단해졌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말해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사건 피해자로 재소환되어 소비되고, 온갖 억측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있다. 여느 때보다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고 전했다.

상담소는 이날부터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온라인 모금을 시작했다. 상담소는 "피해자가 20년간 피해로 인한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일상의 고단함을 벗어나 인간으로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공개 모금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피해자와 상의한 끝에 공개적이고 투명한 모금을 이어가 보자고 결정하고 모금함을 연다"고 설명했다. 후원금 전액은 피해자의 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이다. 기부는 상담소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258명이 참여해 758만5,000원이 모였다.

2004년 경남 밀양 지역 고등학생 44명이 온라인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 등을 1년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에 가담한 44명 중 10명은 기소됐으며 20명은 소년보호시설로 보내졌다. 나머지 14명은 합의로 공소권 상실 처리됐다. 44명 중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전과기록이 남지 않아 논란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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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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