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벚꽃동산'을 보았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200여 편을 본 뒤 현지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고민 끝에 전도연, 박해수 등 거물급 스타 연기자들을 낙점했다는 점 등으로 공연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워낙 기대를 모은 작품이라 첫날 어떤 리뷰가 올라올지도 궁금했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독 짧은 악평을 쓴 사람들의 글이 눈에 띄었다. 배우들이 육성 대신 마이크를 차고 연기하는 바람에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대사 타이밍도 엉망이라서 볼 만한 건 무대 장치밖에 없었다는 평은 그나마 공연 초반이라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 생각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이전에 본 소극장 무대가 그립다'라는 평은 좀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관람한 날은 막이 오른 지 닷새째였는데 원작 배경을 현대로 바꾼 각색과 연출의 과감함, 그리고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열 명 배우의 열연 덕분에 큰 감동을 느꼈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엔 연기자들이 연출자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는지 매 회 얼마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극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누군가 오랜 시간을 들여 기획하고 힘을 합쳐 만든 작품을 굳이 폄하하는 심리는 뭘까.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문화적 소양이 높다는 자부심과 개인적 취향에 안 맞는 부분만 부각해서 꼬집는 쾌감 때문일까.
문득 얼마 전 온라인 서점을 돌아다니며 새로 나온 책마다 악평을 남겨 화제가 되었던 출판계 인사 한 명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낸 책에도 찾아와 정성스럽게 낮은 별점과 악평을 남긴 바 있었다. 출판계 사람들은 워낙 독불장군이니 그냥 무시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어려워 고소도 하고 심지어 자살도 일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무조건 좋다고 쓰자는 게 아니다. '읽고 나서 좋았던 작품에 대해서만 쓰기로 했다'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힌트로 삼아 보자. 좋았던 것에 대해 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왜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글을 쓰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 피드에 몇 년 전 올라왔던 글이 보였다. 내가 첫 책을 내고 SNS에 내 책 얘기로 도배를 하고 있을 때 누가 내 담벼락에 쓴 글이었다.
"편성준 씨. 이제 좀 적당히 하시죠. 책 자랑도 나름 횟수와 품격을 유지해야죠. 겸손으로 포장하면서 속내는 좀 더 많이 세일즈 하고 싶은 욕망이 그렇게 서투르게 드러나면 보는 사람도 너무 쑥스러워요. 혹시나 이 책 샀다가 실망하면 참 서로가 민망해져요. 딴 뜻 없어요. 그냥 안쓰러워서요."
4년 전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놀라고 무안해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내가 잠깐 근무한 광고회사의 선배였는데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었다. 다른 뜻은 없다면서 이토록 효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그의 능력이 신기했다. 나는 조용히 그와 '페친' 관계를 끊었는데 다행히 이후에 내 책을 사거나 추천한 사람들이 환불소동을 벌이거나 민망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저, 나쁘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좀 참아보면 어떨까요. 뭐든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행복하게 사는 것 같더라고요. 하는 일도 잘 풀리고요… 아, 실제로 이렇게 말할 용기는 없지만 그냥 생각해 보는 거다. 긍정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