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조사해 온 국민권익위원회가 사건을 '위반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인 판단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지, 윤 대통령이 가방 수수 사실을 인지했는지, 규정에 따른 신고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서도 세부적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6개월 가까이 질질 끌다 내놓은 결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권익위가 그제 오후 갑자기 전원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의결한 뒤 브리핑에서 내놓은 설명은 160자 남짓이었다. 김 여사에 대한 종결 결정은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어서’라는 이유가 전부였다. 윤 대통령 역시 ‘청탁금지법 시행령 14조 사유에 해당돼서’ 종결한다고 했다. 언론에 공개된 것 외에 새로운 증거가 없거나, 법 위반 행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청탁금지법에 배우자 처벌 규정이 없다는 건 법 조문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아무런 판단도 없이 종결 처리를 할 거였다면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업무일 기준 116일이 걸렸다. 법이 정하고 있는 처리시한(60일)을 넘기고 연장기한(30일)도 초과했다. 강제성은 없는 훈시규정이라지만, 이렇게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처리를 늦춘 이유에 대해 단 한마디 설명도 없다.
법은 ‘배우자가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8조4항)고 하고 있다. 이를 알고도 공직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배우자는 처벌을 받지 않아도 공직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아야 한다. 명품가방 수수의 직무 관련성이나 신고 여부 등 실체적 진실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이 종결 처리한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더구나 공직자 이외 부패행위 신고까지 조사하는 권익위로선 청탁금지법만이 아니라 알선수재 혐의까지 조사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수사·감사 기관 이첩 없이 사건을 덮어 '면죄부'를 준 것은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에 가깝다. 공직사회엔 '부인은 받아도 된다'는 부패 논리만 제공했다. 이러니 “공직자 청렴의 보루인 권익위마저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야당의 거친 논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건을 수사하던 중앙지검장 교체에 이어 ‘반부패 총괄기구’라는 권익위까지 권력 눈치보기 식 맹탕 결과를 내놓았으니 특검 명분만 더 쌓이게 됐다. 덮으려 할수록 악수(惡手)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어제 "수사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권익위가 청탁금지법 소관 부처라는 점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나, 검찰은 이와 무관하게 철저히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