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소설가·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에서 제정 러시아 말기의 라네프스카야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과 사랑에만 관심을 둔다.
#. 2024년 서울 버전의 '벚꽃동산'에서 한국 재벌가의 송도영(전도연)은 파산 직전인데도 술 파티를 연다.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순수한 영혼의 캐릭터다.
호주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체호프의 희곡을 번안한 이번 작품에서 전도연은 삶의 고통을 두 딸에게 전가하는 '나쁜 엄마'임에도 매혹적이다.
11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전도연은 "배우 생활을 오래 해 새로운 에너지를 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 했는데 무대가 주는 자극과 에너지가 있어 즐기려 한다"고 말했다. 프리뷰를 포함해 10회의 공연을 마친 그는 "첫 무대 때는 죽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고, 아직까지 관객과 시선을 못 맞추겠다"면서도 "그래도 이 긴장감과 불안감이 마냥 싫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도연은 27년 전에 섰던 무대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연극과 거리가 멀었다. '벚꽃동산'은 방송, 영화보다 폭넓은 선택지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K콘텐츠의 성과가 영화와 드라마 장르에만 집중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터다. 그는 "불안정 속에서 균형과 안정감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고 성장한다"며 "매일 완벽히 무대를 소화하기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더 하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전도연은 주로 대본의 이야기를 보고 작품을 고르지만 '벚꽃동산'은 연출가를 보고 과감히 선택했다. 스톤은 고전의 탁월한 현대적 재해석으로 세계 주요 극장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연출가이자 '더 디그'(2021) 등을 선보인 영화감독이다. 전도연은 "전작 '메디아'의 공연 영상을 접한 뒤 피가 끓었다"고 말했다.
그런 스톤의 '쪽대본' 작업 방식 때문에 연습 초기엔 애를 먹었다. 연습 시작일인 올해 4월 1일 겨우 15장의 대본이 나왔다. 전도연은 "속으로 욕도 많이 하고 정식 계약을 안 했으니 관둘 수 있다고 협박도 해 봤다"며 "대본을 완성하면서 보여준 연출 방식에 신뢰가 갔고 지금은 사이먼이 다른 작품을 또 하자고 하면 응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전도연은 송도영을 대본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극 중 송도영은 입양한 첫째 딸 강현숙의 애인 황두식과 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둘째 딸 강해나의 남자 변동림과 키스한다. 전도연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캐릭터이지만 사이먼이 '넌 뭘 해도 괜찮다'고 믿어줘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전도연은 지난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일타 스캔들' 출연을 계기로 그간 하지 않았던 나이 듦에 대한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1973년생인 그는 "'저 나이에 어떻게 로맨틱 코미디를 하지'라는 반응이 충격적이었다"며 "하지만 감독이 나이와 상관없이 나라는 배우를 필요로 한다면 스스로 한계를 둘 것 없이 흐름대로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전도연의 선택은 좋은 작품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는 것이 '벚꽃동산'으로 한계를 한 번 더 넘은 전도연의 소망. 작품에 대한 애정 표현도 빼놓지 않았다. "전도연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는 말은 사실이기 때문에(웃음), 그것보다는 '벚꽃동산'이 좋은 작품, 사랑받는 작품으로 회자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