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끼는 리본의 침묵의 절규

입력
2024.06.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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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프로빈스타운의 기도의 리본- 1


미국의 동성애자 증오범죄는 성적 모욕 등 언어폭력이나 협박에서부터 집단 총기 테러까지 하루에 한 건꼴로 빚어지고, 그 절반가량이 혐오단체와 직접 얽혀 있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4월 사이 일어난, 확인된 혐오범죄 356건 중 49%가 혐오-극단주의 단체 회원에 의해 저질러졌다. 이종격투기 동호회로 시작돼 인종주의와 신나치즘으로 세력을 키워온 ‘액티브 클럽’ 등 그 단체들의 공격 대상은 성소수자와 무슬림, 흑인, 유대인 등으로 대개 겹친다. 언론들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그들의 도발이 더욱 극렬해질 것을 우려한다.

꼭 8년 전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16년 6월 12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한 게이 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이슬람 테러조직 ISIL의 이념을 추종하던 만 29세 아프가니스탄계 미국 청년이 돌격소총과 권총을 지닌 채 나이트클럽에 난입, 시민과 경찰 등 49명을 살해하고 58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사살된 사건. 9·11 테러 이후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이자 증오범죄였다. 그날 클럽에선 라틴인의 밤 행사가 열렸고, 희생자 대부분도 히스패닉계였다.

미국 전역을 경악하게 한 저 사건에 가장 뜨겁게 분노하며 희생자들을 애도한 곳이 직선 거리로 2,000여km나 떨어져 있는 매사추세츠주 프로빈스타운(P타운)이었다. 자타공인 “게이들의 해방구”인 P타운 주민들에게 올랜도 테러는 그야말로 자기 일이었다. 주민들은 마을 중심가와 항구 거리 전역을 애도의 검은 리본으로 덮거나 매달았고, 그 소리 없는 함성으로 세상의 증오에 항거했다. 그리고 매년 희생자들의 기일마다 그 행사를 이어왔다. 2022년 6월 올랜도 시당국은 P타운 주민자치단체인 ‘P타운 커뮤니티 협약’ 관계자들을 초청, P타운의 리본(prayer's ribbon)으로 올랜도 시청사를 감싸 달라고 청했다.(계속)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