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시추 자금 '1년 예산' 다 써도 1100억 원뿐… 예상 비용 '5분의 1' 수준

입력
2024.06.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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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 국내광구 탐사개발 예산 700억 원
자원개발 특별융자 예산은 400억 원 배정
정부 다섯 번 시추에 '5,000억 원' 소요 예상
"정부 관련 예상 항목 증액 나설 수밖에..."
야당 반대에 국회 예산 심의 통과 미지수
해외서도 "지금은 꿈" 투자 유치 쉽지 않아


한국석유공사가 쓸 수 있는 국내 광구 탐사개발 1년 치 예산이 포항 영일만 시추 예상 비용 약 5,000억 원의 20%인 1,000억 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정부가 자원개발을 이유로 석유공사에 지원할 특별 융자까지 합해도 겨우 한 번 구멍을 뚫을 정도인 1,100억 원밖에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관련 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석유 매장 가능성, 경제성 등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는 야당이 버틴 국회 심의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금융계 및 정유업계에서도 회의적 시선이 지배적이라 외부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공사, 국내 광구 탐사개발 예산 '698억 원'뿐


9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석유공사가 올해 사용할 수 있는 국내외 유전개발 예산은 총 2조3,907억 원이지만 '국내 광구 탐사 및 개발'에 배정된 예산은 698억 원뿐이다. 국내외 유전개발용 예산의 약 3% 수준이다. 나머지 2조3,000억 원가량은 해외 광구 탐사 및 생산, 광구 관리비, 해외 광구 영업외 비용 등에 배정돼 있다.

정부는 석유공사를 통해 포항 영일만 인근 7개 광구에 최소 5회의 시추를 통해 석유, 가스 등이 묻혀 있는지 확인할 계획인데 시추 1회당 비용으로 1,000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석유공사에 배정된 국내 광구 탐사 및 개발 1년 예산으로는 시추 한 번도 해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특별 융자 예산도 400억 원 수준...다른 기관이 빌려 쓰면 더 줄어


정부는 결국 석유공사에 추가로 돈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지원 방식으로는 '자원개발 특별융자'가 거론된다. 이는 15년에 걸쳐 국내외 자원 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빌려주는 제도다. 문제는 융자 예산 규모가 398억 원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이 예산을 모두 석유공사에 빌려줘도 석유공사가 기존 국내 광구 탐사 및 개발 예산과 합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1,100억 원 정도다. 모든 예산을 다 끌어와도 시추를 한 번밖에 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마저도 자원개발 특별융자 예산을 모두 석유공사에서 쓴다는 가정이 있을 때다. 자원개발 특별융자는 해저광물자원개발 사업자로 허가를 받았거나 해외자원개발 사업 계획을 산업부에 신고하는 등 조건을 갖추면 누구나 융자를 신청할 수 있다. 만약 석유공사 외 기업이나 기관이 융자를 신청해 예산을 쓰면 석유공사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은 398억 원보다 적어져 '1회 시추 비용'도 손에 쥐기 힘들어질 수 있다.



정부 예산 증액 시도 관측...국회 문턱 넘을 수 있나


관가에서는 정부가 석유공사에 배정하는 예산과 자원개발 특별융자 예산을 늘리려고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럴 때 정부가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기존 예산 항목의 규모를 늘리는 것"이라며 "석유 매장 가능성을 검토한 액트지오(Act-Geo) 고문을 한국에 불러들인 것도 앞으로 예산을 늘리기 위한 대국민 설득 작업"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실제 관련 예산을 늘리려 해도 자신할 순 없다. 예산 증액은 국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국회 의석수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들은 석유 매장 가능성, 경제성에 의문을 품는 한편 국회 상임위원회가 꾸려지는 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 내용을 국회 차원에서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해외마저 회의적...S&P "지금 단계는 희망과 꿈일 뿐"


국내외 투자 유치도 낙관할 수 없다. 해외 유수 금융 기관과 정유업계에서도 포항 영일만 석유 매장 가능성이나 경제성을 낮게 보고 있어서다. 실제 3대 글로벌 신용 평가사 중 하나인 S&P는 한국의 유전 발견 가능성을 두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깎아 내렸다. S&P는 글로벌 정유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엄격한 테스트와 막대한 재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생산을 실현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S&P는 또한 유럽 에너지 자원 트레이딩 기업 관계자 의견을 인용해 "지금 단계에서는 희망과 꿈일 뿐이다. 한국과 같은 미개발 지역에서는 성공률이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