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는 흔히 예술과 혁명의 도시로 불린다. 파리가 매력적인 건 화려하고 요란한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농축된 수많은 이야기 때문이다. 평생을 파리에서 살아온 급진 좌파 출판인 겸 작가 에리크 아장이 66세였던 2002년 처음 출간한 ‘파리의 발명’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단순히 파리의 역사나 명소를 다룬 책이 아니라 파리라는 도시의 공간과 역사, 주민들의 삶을 함께 다룬, 파리에 관한 심리지리학적 지침서다.
아장은 파리를 세밀하게 구역별로 나눠 해당 구역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그러한 변화에 따라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역사 문헌, 문학 작품, 회화, 사진 등을 인용해 보여준다. 한때 도박과 매춘으로 유명했던 팔레루아얄이 1836년 도박금지령으로 급격히 쇠퇴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프랑스 대문호 발자크의 작품에 언급된 내용을 가져와 생동감 넘치게 재구성한다. 파리의 지리를 잘 아는 독자일수록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지도를 옆에 두고 따라가며 읽기만 해도 가상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파리에 관심이 많지 않다면 지나치게 상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옛 파리와 새로운 파리, 센강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눠 쓴 1장으로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한 저자는 이후 프랑스 제2공화국 수립의 바탕이 된 1848년 2월 혁명에 초점을 맞춰 파리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한다. 세 번째 장에선 예술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파리를 소개한다. 파리의 유명 관광지만을 다녔던 독자라면 파리의 거의 모든 대로와 구역, 작은 마을까지 세심하게 챙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전혀 다른 파리의 얼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