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편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반드시 선거 당일 투표장에 나가야만 표가 조작될 염려가 없다는 종전 입장을 바꾼 것이다. 접전을 승리로 이끌려면 지지층 표를 단속하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공개한 새 캠페인 ‘투표를 압도하라(Swamp the Vote)’의 영상에서 “부재자 투표, 우편 투표, 조기 직접 투표, 선거 당일 투표 등 어떤 방식으로 투표하든 우리는 여러분의 표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능한 한 어떤 방식으로든 계획을 세우고 등록하고 투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RNC는 공화당 중앙조직으로 자당 후보들의 선거 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한 표가 아쉬울 정도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표 차이가 근소할 수 있다는 예상이 반영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영상에서 “엄청난 투표율로 급진적 민주당을 압도해야 한다”며 “이기는 방법은 그들이 속일 엄두를 내지 못할 표 격차로 압도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미국의 우편 투표 제도는 사전 투표의 일종으로, 선거 당일은 물론 사전 투표 기간에도 기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미국은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니므로 대도시 근로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당시엔 감염 우려로 정부가 우편 투표 등 비대면 투표를 권고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편 투표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4월엔 “많은 사람이 우편 투표로 부정행위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선 직전까지도 지지자를 상대로 투표장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플로리다주(州) 키시미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도 “우편 투표는 재앙”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음모론은 지지층에 불신을 심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월 공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편 투표가 허용돼야 한다고 대답한 공화당 지지자 비율이 2020년 49%에서 올해 28%로 급감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찬성률도 감소했지만(87%→84%) 소폭이었다.
우편 투표 비난은 자승자박이 됐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RNC가 새 투표 독려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우편 투표 등 비전통적 투표 방법의 조작 가능성에 대한 유권자 우려를 눅이려는 의도”라며 “우편 투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던 트럼프가 180도 전향했다”고 평가했다.
격전지 표심은 더 알 수 없게 돼 가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애틀랜틱대와 메인스트리트리서치가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때 근소하게 이긴 3개 경합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지지율을 조사했더니 각 주뿐 아니라 전체 평균으로도 두 전·현직 대통령이 오차 범위(±2.2%) 내 접전 양상을 보였다. 줄곧 밀리던 바이든 대통령이 추격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RNC는 새 캠페인의 핵심 표적이 격전지 유권자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