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현지화·자동화로 미국 시장 뚫는다… 미 테네시 LG공장 3곳 가봤더니

입력
2024.06.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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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에 전기차 배터리·양극재까지
GM 합작 얼티엄셀즈 2공장 첫 공개
관세 올리면 냉장고·TV도 생산 채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남부 테네시주(州) 스프링힐 얼티엄셀즈 제2공장. 수도 워싱턴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테네시 주도 내슈빌 공항에 내려 다시 남쪽으로 60㎞ 정도 이동하자 축구장 35배 크기(24만7,000㎡)의 대형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지분을 50%씩 보유한 합작 투자 법인이 얼티엄셀즈다. 2조7,000억 원이 투자된 2공장은 전기차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셀을 생산하고 있다. 2021년 4월 건설 계획이 발표된 지 약 3년 만인 지난 3월 본격 가동이 시작됐다.

감시와 검사만 사람 몫

생산 라인 입구에 들어서자 투명한 플라스틱 벽 내부 기계를 점검·조작하는 직원 몇 명만 보였다. 공장은 대부분 자동화한 상태였다. 라인에선 전극 공정에서 만들어진 양극판과 음극판에 분리막과 전해질을 더해 배터리의 외형을 완성하는 조립 공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비전 시스템’ 모니터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고 제품이 멀쩡한지 검사하는 것만 사람 몫이었다.

'수율(품질 기준 충족 제품 비율)'은 고장 없는 기계에 실수 없는 사람의 힘이 합쳐져야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한국만큼 숙련된 직원을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짜낸 아이디어가 일을 가상 체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뮬레이터 교육이었다.

교육장의 시뮬레이터는 16대였고, 기계마다 직원이 앉아 있었다. 교육 감독관인 데이미언 머호니는 “일주일간 훈련이 끝나면 일단 생산 라인으로 보내는데, 처음에는 관찰만 시키고 한 달간 매주 역량 평가를 거쳐 맡기는 업무를 늘려 간다”고 설명했다. 이 공장에선 1,2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양산 한 달 만에 수율 90%

성과는 빨리 나타났다. 공장을 본격 가동한 지 한 달 만인 4월 수율 목표치를 달성했다. 폴란드 공장의 경우 1년 넘게 시행착오를 겪었다. 김영득 법인장은 “30년 넘게 쌓아 온 양산 경험과 기술 리더십을 토대로 역대 최단 기간에 90% 이상 수율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2공장 배터리 셀이 탑재될 GM 전기차는 1회 충전으로 500㎞ 이상 달릴 수 있는 3세대 하이엔드(최고급) 제품이다. 캐딜락 리릭은 최저가 모델이 5만8,000달러(약 8,000만 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품질이 더 중요하다. GM 측 최고책임자인 크리스 드소텔스 공장장은 “LG에너지솔루션은 최고의 파트너”라며 “리릭의 성공적 출시는 양사 파트너십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네시로 가는 이유

GM, 닛산,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전기차 생산 거점이 몰린 테네시주는 ‘전기차·배터리 벨트’로 불린다. 2년 뒤면 전기차 배터리 셀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를 얼티엄셀즈에 공급할 LG화학 공장도 스프링힐에서 북쪽으로 약 140㎞ 떨어진 클라크스빌에 들어선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양극재 공장 부지는 기초 공사로 분주했다. 2026년 6월 양산에 들어간다는 게 회사 계획이다.

테네시주가 비단 전기차 유관 산업에만 유리한 지역은 아니다. 클라크스빌에는 이미 LG전자 세탁기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LG의 미국 시장 공략 전진 기지로 테네시주가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테네시는 미국 본토 중남부에 위치해 물류 입지가 좋은 데다, 2022년부터 청년층 인구가 가파르게 늘고 있어 인재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LG 측은 소개했다.

‘스마트 팩토리’의 원형

LG전자 테네시 공장은 모든 LG 공장의 지향점인 ‘스마트 팩토리(지능형 공장)’의 원형이다. 지난달 31일 찾았던 공장에선 ‘자율주행 물류로봇(AMR)’이 바닥에 부착된 QR코드를 읽고 주변 환경을 인식하며 자재와 부품을 필요한 장소로 나르고 있었다.

비싼 인건비를 줄이려 확대한 자동화는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결과도 얻었다. 송현욱 생산실장은 “자동화 덕에 인원을 100명가량 줄일 수 있었는데, 한 명 줄일 때마다 연간 약 8만 달러(약 1억1,000만 원)가 절감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용 인원은 초기 약 800명에서 현재 약 900명으로 늘었다. 손창우 법인장은 “자동화로 경쟁력을 갖춘 덕에 공장이 계속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LG전자의 테네시 공장 설립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첫 임기 때 한국산 세탁기가 ‘관세 폭탄’을 맞는 바람에 준공을 서둘렀고, 2018년 12월 양산을 시작했다. 고육책인 현지화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덕에 ‘신의 한 수’가 됐다. 손 법인장은 “당시 세탁기 수요가 급증했고, (미국 시장 내) 근접 생산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관세 등 무역 장벽이 다시 높아질 경우 기존 세탁기와 건조기뿐 아니라 냉장고와 TV 등 다른 생활가전 제품도 미국에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게 LG 측 얘기다.

스프링힐·클라크스빌(미국 테네시주)=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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