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타님, 하고 싶은 대로 해~"... 우쭈쭈 팬덤이 무책임 연예인 만들다

입력
2024.06.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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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팬덤의 그늘: ①어긋난 팬심]
김호중 사태로 드러난 강성팬덤 '실드'
"내 스타만 잘되면 그만" 이기적 태도
사재기, 경쟁스타 비방, 스토킹도 여전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음주운전 사고를 본 김호중 팬카페 반응)
"소주 열 잔 정도 마셨지만 음주운전 사고는 아닙니다."
(김호중 소속사)

스타와 팬이 어떻게 이렇게 닮은꼴일 수 있을까.

음주운전 뺑소니 혐의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의 사후 대처는 숱한 연예인 사건사고 역사 중에서도, '최악의 대응'으로 손꼽힐 만하다. 그는 처음엔 ①"내가 운전하지 않았다"고 했고, 다음엔 ②"술잔을 입에 댔지만 마시진 않았다"고 해명했으며, 결국 ③"술을 마셨지만 음주 때문에 벌어진 사고는 아니다"고 발뺌했다. 경찰에 출석해 비공개 귀가를 요청하다가, 거절당해 정문으로 나가게 되니 ④"수사기관의 인권침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비밀

현실감각 제로에 가까운 이 '우주 대스타'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팬덤 없이는 불가능했다. 공권력마저 얕잡아본 김호중의 뻔뻔함은, 종교와 같은 신앙심으로 스타를 무조건 추종한 극성 팬덤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김호중 팬들은 잘잘못 가리기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자기 스타가 행여 활동하지 못할까만 걱정하며 허물 감싸기에 급급했다.

사랑하는 스타의 추락을 안타까워하거나 동정하는 정도는 인지상정이지만, 문제는 피해자가 있고 공권력까지 농락하려 했던 시도를 '별것 아닌 일'이나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한 점이다. 최근 KBS가 김호중의 방송 출연 정지 결정을 내리자, KBS 시청자 게시판엔 "아직 젊은 30대 초반 나이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청년"이라거나 "보듬고 안아주는 관용이 필요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과보호는 음모론으로까지 이어진다. 한국일보가 콘서트장 등에서 김호중 팬들을 만나 물어봤더니, 대부분 '음주뺑소니'에 대해선 잘못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팬들은 수사를 진행한 경찰과 이를 보도한 언론을 향해 거친 반응을 숨기지 않았고, 정부 실정을 숨기기 위한 음모의 희생양으로 김호중이 선택됐다고 주장했다. 한 팬은 배우 이선균 사건에 빗대 "사람 하나 잡는 것은 일도 아니다"며 "경찰이 김건희 (디올백) 사건을 덮기 위해 충성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원 사재기·스토킹 등 범죄로도

극성 팬덤의 문제는 '무작정 숭배'나 '닥치고 실드'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팬덤 안에서 일어나는 우상화는 그들 내부 일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문제는 불가피하게 이런 강성화 경향이 외부를 향한 공격적 성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먼저 '내 연예인'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어긋난 팬심이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은 가수 황영웅은 과거 학교 폭력, 데이트폭력, 폭행 등 의혹이 잇달아 일자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자숙에 들어갔다. 그러나 6개월 만에 미니 앨범을 발매하며 복귀했는데, 팬들은 50만 장 판매로 보답했다.


"박유천의 인품은 팬들이 가장 잘 알며, 그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일본 팬연합 지지 성명 중에서)

이건 비단 국내 트로트 팬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돌 쪽도 마찬가지고, 해외 팬이라고 다르지 않다. 성폭행과 마약 등 혐의를 받은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은 거짓 해명 등 논란을 일으켰지만, 일본 팬클럽 74개 단체는 "한국과 일본의 보도는 대부분이 오보이므로, 박유천씨 본인 또는 대리인의 공식 발표만을 받아들이겠다"며 눈과 귀를 닫았다. 박유천은 2020년 복귀를 시도하면서 연회비 6만6,000원 상당의 유료 팬클럽 회원을 모집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가수를 띄우기 위한 음원 사재기는 범죄 수준으로 심각하다.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15개 음원을 172만7,985회 재생해 순위를 조작한 혐의로 홍보대행사·연예기획사 대표와 관계자 등 11명이 지난달 재판에 넘겨졌다. 여기는 가수 영탁의 소속사 대표도 포함돼 있었다. 팬덤이 이런 사재기에 '총공격'과 같은 방식으로 동참하면서 음원 시장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연업계 관계자는 "소속사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앨범이나 상품 구매를 유도한다"며 "빠르게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팬의 충성심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미 고전이 된 사생팬(사생활을 침해하는 극성팬)이나 스토커 관련 사건도 끊임 없이 터진다. 법원은 올해 1월 비⋅김태희 부부의 집을 수차례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40대 여성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아이돌 그룹 BTS '뷔'의 집을 찾아가 말을 걸고, 혼인신고서를 전달한 20대 여성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및 주거침입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팬덤 양적 성장의 그늘 돌이켜봐야


"팬들은 유명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유명인과 관계에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한 나머지 우상의 추락을 고려하지 못한다."
(마이클 본드의 저서 '팬덤의 시대' 중에서)


K팝과 K드라마가 세계시장에서 대세로 떠오르면서,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양적 팽창도 빨라지는 중이다. 스타를 추종하는 팬덤의 규모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팬덤의 강도도 강해지고 있다. 스타는 그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특권을 누린다.

이제 양적 팽창에만 주력했던 국내 팬덤 문화를 되짚어보고, 질적인 측면에서 제대로 성찰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박윤혜 대경대 K모델연기과 교수는 "지나친 팬심은 모두의 판단을 흐리고, 심지어 범죄를 옹호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폭발적으로 성장한 연예 산업의 속도에 발맞춰 이제는 성숙한 팬 문화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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