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왜 9·19 군사합의 ‘폐기’ 아닌 ‘효력 정지’ 카드를 빼들었을까

입력
2024.06.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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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군사적 대응 폭 넓혀 놓고 
②북한과의 관계 개선 여지도
③극단적 결정 시 책임 소재 우려도


정부가 3일 꺼내 든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카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 여지는 남겨야 한다"는 취지의 선택으로 일단 받아들여진다. 향후 적극적인 군사적 대응을 위한 멍석을 깔기는 하지만, 극단적 대응으로 자칫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합의가 이미 사문화된 상황에서, 폐기보다는 효력 정지에 더 실익이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3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9·19 군사합의 전면 폐기를 선언했을 경우 다시 주워 담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효력을 정지했을 경우 "사실상 폐기 효과를 보면서도 폐기 선언에 비해 북한을 덜 자극하고 정치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양 교수의 분석이다. 이에 더해 군사합의 무효를 사실상 공식화한 북한과 달리 '정상 국가로서의'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부각하겠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다른 북한 전문가들도 '군사적 운신의 폭을 넓힌 행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번 군사합의 효력 정지 선언이 비(非)군사적 대응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대응인 동시에 앞으로 북한의 도발이 지속될 경우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 놓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효력 정지로 우리 군도 서해상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하거나, 어선 보호 조치 등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며 "효력 정지된 9·19 군사합의를 원상복구하는 과정 또한 향후 북한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 가능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폐기를 선언했을 때 따를 정치적 부담도 피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홍 실장은 "곧장 폐기를 선언할 경우 남북 간 긴장감을 더 키우고,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 또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도발이 당장은 불쾌할 수 있지만 냉철함이 필요하다"며 "굳이 극단적 강수를 둬 상황을 더 악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