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 풍선' 도발에 남북 완충지대 없앤다... 9·19 군사합의 효력 전면 정지

입력
2024.06.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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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일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 조항의 효력 정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오물 풍선'을 무더기로 살포하고 위성항법장치(GPS) 전파를 교란하는 북한의 도발에 맞선 초강경 대응조치다.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강조한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나서기 위해 족쇄를 풀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2018년 이후 6년간 유지된 남북 군사대결의 완충지대가 사라진다. 저비용으로 사회 혼란을 극대화하려는 북한의 저강도 회색지대 도발로 인해 무력 충돌 위험성이 커지는 고강도의 위기상황으로 남북관계가 치닫고 있다.

국가안보실은 이날 김태효 NSC 사무처장 주재로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NSC 참석자들은 "최근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미 유명무실화한 9·19 군사합의가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대북 응징수단인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온전하게 훈련을 실시하기 위해 9·19합의 효력 정지가 우선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전날 심야 입장 발표를 통해 "국경 너머로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며 꼬리를 내렸지만, 풍선에 오물이 아닌 생화학무기를 실어 날릴 경우 언제든 대남 테러로 격화할 수 있다.

이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면서 북한이 재차 도발할 경우 즉각 반격에 나설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조치는 우리 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른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며, 그동안 9·19 군사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9·19 군사합의는 북한의 잇단 도발로 유명무실해졌다. 올해 1월 기준 북한의 합의 위반 사례는 3,000회가 넘는다. 정부는 지난해 말 북한이 정찰위성 3차 발사를 감행하자 9·19 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1조 3항) 효력을 정지했다. 이번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효력이 전면 정지되면 지상의 완충구역도 없어진다. 물론 9·19 합의는 과거 빈번하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 무력 충돌 등을 줄인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군의 정찰 능력과 전투력을 약화했다는 역효과가 치명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취임 첫해 북한이 잇따라 탄도미사일을 쏘자 "군사 합의 유지 여부는 북한 태도에 달려 있다"(2022년 10월 14일)고 경고했다. 이후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까지 유린하며 도발하자 윤 대통령이 직접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2023년 1월 4일)고 지시했다. 이어 북한이 정찰위성 3차 발사를 예고하자 대통령실은 "남북이 협의한 어떤 사항도 국가 안보를 포함하는 중대 사유가 발생할 경우 합의의 부분 또는 전체에 대해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2023년 11월 21일)며 비행금지구역을 무력화했다. 그러고는 북한이 오물 풍선 1,000여 개를 띄우며 공격하자 마지막 남은 9·19 합의 전체 효력 정지 카드를 꺼냈다.

김현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