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의 나라'로 불리는 멕시코에서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어느 나라보다 남성 중심 문화의 뿌리가 깊은 만큼 주요 양당의 '여성 후보 2파전'은 일찌감치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기대는 엇갈린다. "남성 우월주의를 깨부수는 역사의 진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진정한 변화는 멀었다"는 비관도 만만찮다.
2일(현지 시간) 치러지는 멕시코 대선에서 이 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여야 유력 후보 모두 여성이기 때문이다. 누가 되든 멕시코 200년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당선자는 인구 1억3,000만 명의 멕시코를 6년간 이끌게 된다. 당선자 윤곽은 한국 시간으로 3일 오후에 나온다.
이번 멕시코 대선에선 진보 성향의 집권 여당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과 보수 성향인 야당 연합의 소치틀 갈베스(61) 후보가 맞붙었다.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인 셰인바움 후보는 과학자 출신으로, 환경부 장관과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냈다. 그가 당선되면 멕시코 최초 유대계 국가원수 기록도 세우게 된다. 6년 단임제로 재선에 도전할 수 없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의 정치 후계자로도 불린다.
갈베스 후보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정보기술(IT) 회사를 이끌었다. 멕시코 원주민으로 학창 시절 거리 장사에 뛰어들 만큼 가정 환경이 불우했다고 한다. 2015년 멕시코시티의 미겔 이달고 구청장, 2018년 상원의원에 선출되며 정치 경력을 쌓았다. 자신을 범죄 조직에 맞서는 강한 여성으로 묘사해 왔다. 지지율 1위의 셰인바움에 막판 역전극을 노린다.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 대통령은 흔치 않지만, 멕시코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유독 큰 관심을 끈다. 멕시코가 '마초(Macho)'라 불리는 남성 중심·남성 우월주의 문화가 심한 탓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비율도 높다. 멕시코에서 살해되는 여성이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라는 정부 통계도 있다. 중남미에서도 여성 혐오 범죄가 유독 심한 편이다. 2019년 사망한 멕시코 여성 약 4,000명 중 1,000여 명이 '페미사이드(여성 혐오 살해)' 피해자였다.
다만 정치권에선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일단 여성 의원 비중이 절반에 달한다. 국경을 맞댄 미국도 여성 의원 비중은 30% 미만에 그칠 정도다. 멕시코 상·하원 의장은 물론 대법원장, 중앙은행 총재, 내무·경제·외교·교육부 장관 등도 모두 여성이다. 2019년 개헌으로 강력한 여성 할당제를 도입한 결과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멕시코시티 시장 자리를 노리는 주요 후보 역시 여성이다. 국정과 수도권 행정을 모두 여성이 맡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기대는 엇갈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여성들이 엄청난 비율로 살해 당하고, 남성보다 훨씬 낮은 수입을 얻는 이 나라에서 여성이 국가원수에 오른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평했다. 다만 두 여성 대통령 후보 모두 가정 폭력이나 임금 격차 등 여전히 멕시코 여성들을 짓누르는 차별을 국정의 우선 순위로 다룰지 의심하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