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지분의 58%는 담보설정...험난할 '세기의 재산분할'

입력
2024.06.03 04:30
담보설정한 부채 재산분할액에서 감액 안 한 듯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 항소심에서 1조3,8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산 분할액을 선고받으면서 SK와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2심 판결 내용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0억 원을 줘야 하는데 법원이 총 분할 대상 재산에서 최 회장의 주식담보대출, 질권(담보권) 설정 등은 빼지 않아 최 회장의 실제 재산액이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부채를 뺀 현재 최 회장의 재산 전액을 노 관장에게 지불해도 법원 선고액을 감당하기 빠듯할 것으로 보여 당장의 경영권 방어는 물론 3세 승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의 재산은 △SK(주) 주식 1,297만여 주 △SK실트론 주식 1,970만여 주 △40여억 상당의 계열사 주식 △2,200여억 원 규모의 배당금과 퇴직금 등이다. SK(주) 주식 재산은 5월 31일 종가 기준 2조2,860억 원, 비상장 주식인 SK실트론 주식 재산은 6,000억~8,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2심 판결 직후 재계는 최 회장이 대법원에서 원심을 확정받는다면 SK실트론 주식을 먼저 팔고 남은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 SK(주)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SK(주) 주식 일부를 팔 것으로 예상했다.



실트론 지분 인수·친인척 증여...2심에서 악수로 작용


문제는 최 회장 주식 재산의 상당 부분이 이미 금융권 담보로 잡혀 있다는 점이다. 4월 12일 기준 최 회장은 SK(주) 주식 5.45%를 담보로 4,895억 원을 대출받았다. 남은 지분 12.28% 중 4.33%는 다시 SK실트론 주식의 총수익스와프(TRS)를 위해 질권 설정됐다. 2017년 SK(주)와 최 회장은 LG실트론 지분을 각각 71.6%, 29.4% 인수해 회사 이름을 SK실트론으로 바꿨는데 최 회장은 금융권에 SK(주) 주식을 담보로 LG실트론 지분을 확보했다. 만기는 2027년 8월로 금융사는 이자 없이 이때 실트론의 지분 가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업계는 최 회장이 SK실트론 주식을 팔면 최대 8,000억 원대 여유 자금이 생길 거라 보지만 이 권리를 행사하려면 먼저 (질권 설정한) 금융사에 현금이나 SK(주) 주식을 줘야 한다"며 "상장 전에는 주식을 파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는 SK가 실트론 지분 전부를 인수하지 않고 최 회장이 지분 일부를 인수한 것을 두고 '사익 편취'라며 SK와 최태원 회장에게 시정 명령과 함께 각각 과징금 8억 원을 부과했고 SK와 최 회장이 이에 반발해 소송을 내 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최 회장이 SK(주) 주식을 발판 삼아 재산을 늘린 셈인데 노 관장과의 이혼 과정에서 SK실트론 주식이 '총 분할대상 재산'으로 잡히면서 결과적으로 악수로 작용했다.

최 회장의 SK(주) 주식 중 담보가 없는 지분은 7.49%(31일 기준 9,650억 원)뿐이라 배당금과 퇴직금, 예금 등을 합쳐도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액을 한 번에 지급하기는 빠듯해 보인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최 회장이 배당금(연간 650억 원선)을 꾸준히 모아 SK실트론 질권 설정을 풀고 상장시켜 이익을 본다면 3세 승계에 필요한 상속세 상당 부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는다면) 3세 승계에 필요한 재원을 재산 분할에 다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2018년 친인척에게 나눠 준 SK(주) 주식 342만여 주가 이번 총 분할 대상 재산에 잡힌 점도 두 번째 악수로 꼽힌다. 현재 시세로 6,000억 원에 달하는데 상속액 30억 원을 넘으면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 최 회장이 이 지분을 친인척에게 다시 받아 재산 분할에 쓴다고 해도 세금을 내고 나면 처음 주식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