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늦춰진 치킨값 인상… 정부 물가관리 민낯이다

입력
2024.06.01 00:10
19면


어제부터 주요 치킨 가격을 3,000원 올릴 예정이던 제너시스BBQ가 인상 날짜를 이달 4일로 늦춘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부터 올린다고 발표했다가 8일 늦춘 데 이어 이번에는 나흘 추가로 연기한 것이다. 정부 요청 영향이라는데 이게 정부 물가관리의 결과라니 한심할 따름이다.

식품업체나 외식업체가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가 계획을 두 차례나 연기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연기를 하려면 적어도 1, 2분기는 뒤로 미루는 게 통상적이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BBQ는 두 차례나 연기를 했음에도 총 기간이 2주가 채 안 된다. 생색내기 혹은 보여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BBQ가 가격 인상을 며칠이나마 연기한 건 정부 압박의 결과일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측도 “소비자 입장을 생각해 가격 인상을 늦춰줬으면 좋겠다고 일반적인 요청은 했다”며 부인하지는 않는다. 올리브유를 비롯한 원가 인상에 따른 가맹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고 정부 요청에 성의 표시는 해야 되는 사면초가 상황이 ‘나흘 연기’라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연출했을 것이다.

앞서 롯데웰푸드도 초콜릿 주원료인 코코아 가격 급등을 이유로 빼빼로나 가나초콜릿 등 제품 17종 가격을 올린다고 발표했다가 정부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미뤄진 가격 인상은 오늘 이뤄진다. 고작 1개월 늦춰졌을 뿐이다.

물론 원가 요인을 부풀려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경우도 많고, 원재료비가 하락할 때는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악덕상혼도 적지 않다. 당연히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1970, 80년대식 물가 통제 방식은 부작용이 적지 않다. ‘라면 과장’ ‘치킨 사무관’ 식의 품목별 물가관리담당관을 지정해 놓으니 뭐라도 하긴 해야 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게 당연할 것이다.

가격 관리가 필요하다면 시장 참여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세련된 방식이어야 한다. 인상 요인을 제거하거나 편법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은 채 두더지 잡기 식으로 억누르면 언제든 더 큰 반발력으로 튀어 오르는 게 물가의 생리다. 이명박 정부의 물가관리 실패를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