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연속 대남 변칙 도발에 나섰다. 정찰위성에 이어 오물 풍선과 600㎜ 초대형 방사포(KN-25) 발사, GPS 전파 교란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북한이 '적'인 남한 사회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대응 곤란의 '회색지대(grey zone)' 공격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30일 오전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600㎜ 초대형 방사포 10여 발을 쐈다. 비행거리는 350㎞ 정도로, 청주 등 주요 공군기지와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를 목표로 가정한 도발이라는 관측이다. 10여 발을 한꺼번에 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이틀 전인 28일에는 야간을 틈타 오물 풍선 도발을 감행했다. 쓰레기와 거름 등 오물을 담은 봉투를 260여 개 풍선에 매달아 남쪽으로 띄워 보낸 것이다. 타이머와 기폭장치까지 달았으며, 풍선은 외교부 등 서울 내 주요 시설은 물론 경남 거창 등에까지 날아갔다. 2016년 이후 8년 만에 감행한 오물 풍선 공격인데, 이번만큼 많은 양을 한꺼번에 살포한 적은 없었다.
두 도발 사이에는 두 번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공격이 있었다. 29일과 30일 두 번에 걸쳐 서해도서 일대를 노렸다. 군사상 피해는 없었지만, 인천 지역 여객선과 어선의 내비게이션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등 한동안 혼란이 빚어졌다.
이들 도발 중 이목을 끄는 건 오물 풍선과 GPS 전파 교란이다. 저비용으로 사회적 혼란을 극대화하는 전형적인 '회색지대 도발' 방식이기 때문이다. 회색지대 도발은 주체 또는 원점 추적이 어려운 저강도·저비용 공격을 뜻한다.
게다가 이들 공격은 상당 기간 중단됐다 다시 재개됐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가장 최근 가해졌던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및 GPS 전파 교란 작전은 지난 2016년이었다. 물론 GPS는 지난 3월에도 교란이 있긴 했지만, 이번 같은 '본격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사실상 8년 만에 재개된 도발이라는 것이다.
군 당국과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풍선에 오물이 아닌 신경독소 VX나 탄저균, 기타 바이러스 등을 묻혀 보낸다면 피해는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GPS 전파 교란도 상용 GPS에 영향을 끼칠 경우, '교통 대란'은 물론 심각한 운항 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 이번에 공격을 받은 서해 5도 인근은 인천국제공항·인천항 등이 있어 수많은 민간 항공기와 선박이 오간다.
이중구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북한이 적대적 관계를 천명한 이후 그동안 대화 또는 비난성명을 통해 풀었던 남북 현안을 보다 공격적인 방식으로 풀겠다는 접근법"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4일 김 위원장의 '공세적 대응' 주문에 따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했던 현안들에 대한 대응을 바꾸기 시작한 것"으로 "공세적 조치로 한국을 압박해 먼저 조심하게 하려는, 일종의 강압 전술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중순까지 최신 무기체계·전술핵 역량을 과시하는 데 집중했던 북한은 하반기부터 대한민국을 직접 겨냥한 군사도발 감행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분위기다. 지난해 8월 북한은 남한 점령을 목적으로 한 전군 훈련, 같은 해 10월, 11월, 12월 3개월 연속 진행한 서해와 동해의 포병 사격 등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향후 북한이 꺼내들 카드를 보다 경계하며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정원 1·3차장 출신의 대북통 한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본격적인 우리에 대한 도발은 아직"이라고 단정한 뒤, "오물 풍선·GPS 교란 작전이 최근 대북전단과 한미 공군 정찰 및 해군 훈련에 대한 대응이라면, 내달 말 헌법 개정으로 해상국경선을 명시한 뒤 북한의 군사적 도발 수위가 단계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올여름 한미 핵협의그룹(NCG)회의와 8월 을지프리덤실드(UFS) 군사연습, 그리고 11월 미국 대선까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명분은 계속 이어진다.
특히 주목할 건, 지난 24일 김 위원장이 주재한 정치국 회의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일련의 중요 문제'들을 토의·결정하겠다면서 내달 말 전원회의를 소집했다. '적대적 교전국 관계'에 따른 구체적 전력과 영토 조항의 헌법 반영 문제 등의 대책들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제1·2연평해전과 대청해전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