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인 이성자(1918~2009)의 그림이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4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 이성자의 최고 판매가이자 국내 여성 작가 중 최고가 기록이다.
28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크리스티 상반기 이브닝 경매에서 이성자의 1962년 작 '그림자 없는 산'은 추정가 400만~600만 홍콩달러를 훌쩍 넘긴 819만 홍콩달러(약 14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해외 컬렉터로 알려진다. 이성자의 종전 해외 경매 최고가는 2022년 크리스티 홍콩에서 567만 홍콩달러(당시 환율 약 9억 원)에 낙찰된 1961년 작 '갑작스러운 규칙'이었다.
네모, 세모 등 기하학적 도형이 조화를 이루는 추상화인 '그림자 없는 산'은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성자의 한국에 남겨 둔 자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대작이다. 29일 '데이 경매'에 출품된 이성자의 후기작 '천왕성의 도시 4월 No.1(2007)'도 최고 추정가 300만 홍콩달러(약 5억3,000만원)를 웃도는 가격에 팔렸다.
이성자를 포함한 정영두, 손동현, 전현선, 김수연 등 한국 작가 5명이 종전의 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는 등 이번 경매에선 한국 작가들이 약진했다. 경매 전체로 눈을 돌리면 고금리와 전쟁 등으로 인한 불경기의 그늘이 여전하다. 이번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총 9억6,300만 홍콩달러(약 1,696억 원)로, '얼어붙었다'는 평가를 받은 지난해 하반기 경매 낙찰 총액인 10억5,000만 홍콩달러에 못 미친다. 이번 경매 최고 화제였던 앤디 워홀의 '플라워' 연작 중 한 점이 6,662만 홍콩달러(약 117억 원)에 낙찰됐는데, 최소 추정가인 6,280만 홍콩달러를 조금 웃도는 액수다.
르네 마그리트, 마르크 샤갈 등 20세기 거장의 작품은 모두 팔렸다.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는 "불황에는 동시대 작가보다는 검증된 20세기 작품이 인기가 많다는 통설을 보여주는 경매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