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 자료는 4년 지나면 쓰레기... '국회 기록물' 관리 이래서야

입력
2024.06.04 10:00
N면
의원실 개별 자료 보존 법적 의무 부재
낙선 의원실 버린 서류들 '쓰레기' 전락
공공기록물 인식 넓히고 제도 정비해야

22대 국회 첫날인 지난달 30일 기자가 찾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지하 5층 분리수거장은 거대한 '종이무덤'을 방불케 했다. 21대 총선에서 낙선해 짐을 뺀 국회의원들이 버린 자료들이 몰리면서다. 개인정보가 담긴 국회 인사청문회 자료부터 국정감사 질의서와 답변서 등이 눈에 띄었다. 수거에 나선 업체 직원이 "벌써 며칠째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이 나온다"고 혀를 내두르는 순간에도 종이 뭉치를 가득 실은 수레 행렬은 이어졌다.

4년간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기록이 담긴 대규모 서류들이 22대 국회 첫날까지 폐기되고 있었다. 공공기록물 성격을 가진 자료들이 적지 않지만 이를 보존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한 초선 의원실 비서관은 "기록물을 선별하고 정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 선뜻 나서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회 전체 차원의 기록물 보존 의무는 명시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등 법령에 규정된 회의기록물은 별도로 보존하는 국회기록보존소가 있다. 하지만 의원실에서 기록보존소를 이용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 한 재선 의원 비서관은 "국회기록보존소가 자료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지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도 했다. 19대 20곳(6.67%), 20대 14곳(4.67%)에 그쳤고, 21대 국회에서도 지난달 23일 기준으로 28곳 의원실만 기증 의사를 밝혔다.

국회기록보존소 관계자는 "법적 의무가 없어 기증을 적극적으로 권고하기도 어렵다"며 "의원실을 직접 방문해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기증률이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법부 기록물을 관리하고 보존할 체계적인 법률 시스템 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태선 더아카이브연구소 소장은 3일 "의정활동 기록물은 입법부의 핵심 자료다. 어떤 자료를 남기고, 관리할지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민감한 기록물의 경우 대통령 기록물처럼 공개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해외의 경우 영국에서는 기록물법에 상·하원 의원들의 기록물 수집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독립된 아카이브 센터에서 ‘웹하비스트’ 시스템을 구축해 기록을 보존한다. 국회기록보존소 관계자는 "의정활동 기록물 기증 시 기록관리 선순환 구조의 정착을 위해 기증기록 전시회 개최와 자료집 발간, 온라인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기록 정보 서비스를 계속해서 실시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선윤 인턴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