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최후의 피난처'인 최남단 도시 라파 외곽을 들쑤시던 이스라엘군 탱크가 결국 중심부로 밀고 들어갔다. 라파 곳곳의 난민촌은 공습으로 잇따라 불탔다.
이스라엘은 '대규모 지상전'이 아닌 하마스를 표적으로 하는 '근접 전투'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레드라인(금지선)'은 넘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유독 '흐린 눈'을 하는 미국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AFP통신·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측 가자지구 보건부는 28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군이 라파 서쪽 알마와시의 난민촌을 공격해 최소 21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날 앞서 이스라엘군 탱크는 라파 중심가로 진격했다. 탱크는 주요 공공기관, 상점 등이 밀집한 이 지역 랜드마크인 알아우다 로터리에 주둔해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목격담을 전했다. 지난 26일 밤 불바다가 된 라파 서부 탈 알술탄 난민촌에서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친 이후 이스라엘군이 라파 심장으로 공격망을 좁혀 들어간 것이다. 알자지라는 "본격적인 라파 침공이 진행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짚었다. 지난 7일 이스라엘군이 라파 변두리 국경검문소를 장악하며 군사작전에 나선 지 3주 만이다.
29일 오전에도 공격은 계속됐다. 라파에 거주하는 압델 카티브는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나 이스라엘 무인기(드론)의 총격을 받기 때문에 현재 모두 실내에 있다"고 AFP에 말했다.
사실상 라파 지상전 수순이지만 이스라엘은 근접전으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의식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28일 기자회견에서 "라파에 남아 있는 하마스 대대를 표적화 한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별도의 성명을 통해 "근접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 감싸기에 급급하다. 이스라엘군의 라파 지상전 관련 움직임을 인정하면서도 아직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탱크 한 대 정도로는 지상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라파 중심부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의 대규모 지상전을 못 봤다"고 말했다.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둘러싼 논란도 커졌다. 미국 싱크탱크 중동연구소의 칼리드 엘긴디 수석 연구원은 "레드라인은 확실히 의도적으로 흐릿하다"며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미국의 모호한 태도는 불가피하다"고 NYT에 말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이스라엘이 라파의 인구 밀집지역에 진입할 경우를 무기 공급 중단의 레드라인으로 천명한 바 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8일 오후 라파 난민촌 공습 관련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고 TOI는 전했다. 이날 회의 소집을 요구한 알제리는 가자지구에서의 즉각적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 초안을 이날 안보리 이사국에 회람했다. 이르면 29일 표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최근 3주간 피란민 약 100만 명이 라파를 빠져나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수십만 명이 라파에 모여 있다고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전했다. 인도주의 위기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