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이 어제 국회 재표결 끝에 '부결'을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의 반대로 자동 폐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지 1주일 만이다. 'VIP(대통령) 격노설'이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쟁점이라는 점에서 여당이 윤 대통령 방탄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4·10 총선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촉발한 계기 중 하나였다. 총선 참패 이후 일부 여당 의원들이 특검법 찬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VIP 격노설과 대통령실 외압설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대통령실과 같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위해,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당이 특검법을 부결시킨 것은 총선 민심을 저버린 태도라 할 수 있다. 총선 참패 이후에도 윤 정부의 '공정과 상식'을 기대하는 민심보다 '윤심'만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부결 직후 22대 국회에서 특검법 재추진 의사를 공언했다. 그러나 국회 원구성과 법안발의에서 처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젊은 해병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은 당분간 공수처 수사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시간 벌기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지금 방식의 대처로는 총선에서 드러난 것보다 더한 성난 민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해병대 조사 결과에 대한 격노설의 진위를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많은 여론이 윤 대통령의 격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특검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22대 국회에는 민생 현안이 그 어느 때보다 산적해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채 상병 진상 규명을 위한 전향적인 매듭을 짓고 민생에 전념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