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강변역 방향 9-4번 승강장에서 스크린 도어 수리를 하던 19세 청년 김모군이 숨졌다. 안전장치 수리 작업은 '2인 1조'로 이뤄지는 게 원칙이지만, 외주 업체 직원이었던 김군은 혼자 작업을 하다 열차와 스크린 도어 사이에 끼어 변을 당했다. 사회 진출 7개월 차인 '햇병아리 신입'을 위험 현장에 혼자 두다 발생한 이 '구의역 사망 사고' 이후 정치권은 작업자 안전관리 강화를 공언했고,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 위험에서 좀 더 멀어질 수 있었나.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 '구의역 김군'의 희생은 우리 작업장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그날로부터 정확히 8년이 지난 28일, 구의역 그 현장에 김군을 추모하며 안전한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를 기억하는 시민, 노동조합 관계자, 시민단체 회원 등 20여 명이었다.
이날 모임은 구의역에서 시작해 신당역(역무원 살인), 이태원역(이태원 참사), 신길역(장애인 리프트카 추락 사고) 등 갖가지 안전사고가 발생한 서울지하철 역사로 이어졌다. 사고·참사·재해 현장에서 교훈을 찾는 '다크 투어리즘'이었던 셈.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위원장은 "우리가 서 있는 곳곳이 다크투어의 현장"이라며 "참사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안전인력 외주화 △젠더폭력 △사회적 참사와 공공안전 △안전한 이동권을 주제로 각 역사에서 논의를 이어갔다.
구의역에선 사회에 막 진출한 특성화고 청년이 마주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외주화 문제가 논의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참가자들은 "현장에선 다시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전양규 서울교통공사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서울시가 경영효율화를 앞세워 2,212명의 인력감축을 추진한다는데, 이렇게 되면 8년 전 사고와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호선 신당역에선 '일터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참가자들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2년 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역사 내 화장실로 이동해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했던 이 사건을 교훈 삼아, 직장 내 괴롭힘 등을 방지하기 위한 공적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논의가 오갔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직장 내에서 여성 노동자가 안전하게 근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업주나 제삼자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당역을 떠난 참가자들은 6호선 이태원역으로 향했다. 사회적 참사와 시민 안전을 주제로 한 논의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고 문성철씨의 아버지 문효균씨는 "아직도 아들과 자주 찾던 축구 경기장을 갈 때면 마음이 먹먹하다"며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유족들은 그 아픔을 평생 안고 간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이태원 참사는 우리에게 어디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5호선 신길역이다. 이곳에선 2017년 10월 20일 왼쪽 팔이 마비됐던 한경덕씨가 리프트를 타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사고 이후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조재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역사가 있는데, 누군가 크게 다쳐야만 바뀌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비극의 현장을 도는 다크투어가 참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이태원역에서 만난 윤혜정(22)씨는 "참사 이후 안전불감증은 어느 정도 나아진 것 같지만 시스템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몇 년 지나고 나면 잊히기 마련인데 '다크투어'가 참사를 다시 떠올리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