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로 인해 가계 소비증가율이 5%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5세 이하 연령층 중 전세보증금 대출을 받은 경우 고물가로 인한 자산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의 '이중고'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이 발표한 '고물가와 소비: 가계의 소비바스켓과 금융자산에 따른 이질적인 영향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물가 상승은 2021, 2022년 중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려 이 기간 소비증가율(2020년 말 대비)을 4%포인트 내외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8%, 연율로 계산하면 3.8%다. 2010년대 평균(연율 1.4%)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여기에 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금융자산 및 부채의 실질 가치가 하락한 것도 소비증가율을 1%포인트가량 추가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2021년부터 2년간 소비증가율은 9.4%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고물가가 아니었다면 소비가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을 것"이라며 "팬데믹 이후 펜트업(억눌렀던 수요가 급속히 살아남) 소비가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고물가가 강타 안 했으면 소비가 더 빠른 속도로 회복했을 것으로 본다"고 첨언했다.
연구팀은 물가 상승이 가계에 미친 영향도 분석했다. 먼저 가계가 주로 소비하는 품목(소비바스켓)을 감안해 실효 물가 상승률을 계산했는데, 연령별로는 60대 이상 고령층일수록, 소득 수준은 낮을수록 고물가를 더 크게 체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식료품 등 필수재 구입 비중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물가 상승기는 글로벌 공급 차질과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서비스보다 재화(상품)의 기여도(56%)가 더 높아, 재화 소비가 많은 가계일수록 물가 부담이 크고 소비 둔화 정도가 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연구팀은 "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 증가로 이들 (물가) 취약층의 부담은 상당폭 완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지급액을 조정하고, 기초연금은 물가 상승기 동안 정부가 지급액을 대폭 늘렸다.
자산 가격 변동이 가계 소비에 미친 영향을 보면, 많은 가계에서 금리 상승이 물가 상승의 영향을 상쇄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예컨대 금융자산 보유 비중이 높은 고령층은 물가 상승으로 자산 가격에 손해를 보는 대신 저축성 예금의 이자가 오르면서 이득을 봤다. 또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산 저연령층은 부채 가치가 하락해 이득을 봤지만 이자 부담이 늘었다. 하지만 전세대출을 보유한 저연령층처럼 자산(전세 보증금) 가치도 하락하고 대출 이자 부담까지 늘어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