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군사 작전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도주의 참사를 이유로 작전을 만류해 온 미국이 변화 기류를 보인 지 하루 만이다.
로이터통신은 23일(현지시간) 현지 주민 등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이날 라파의 인구밀집 지역인 '이브나' 외곽까지 진격했다"고 보도했다. 라파 남동쪽부터 진격한 이스라엘군이 도시 서부 지역으로 작전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이스라엘군이 라파의 더 깊숙한 곳에서 전투를 벌이며 공세를 도시로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진격은 최근 미국에서 온 신호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전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현재로서는 작전이 비교적 표적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스라엘이 라파 민간인 대피 계획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간 '이스라엘의 보호 계획이 의심스럽다'며 작전 반대 의사를 표명한 데서 한발 물러난 것이다. 내심 미국의 압박이 부담스러웠을 이스라엘로서는 제한적으로나마 작전에 자신감을 갖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NYT는 "최근 이스라엘 관리들은 자신들의 작전 상황을 설명할 때 미국의 요구를 반영한 언어를 사용해왔다"고 짚었다.
현지 구호단체들은 그러나 "미국 정부가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눈을 감을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간인 대피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과 반대로, 현장에서는 극심한 혼란과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난민위원회(NRC)는 전날 성명을 내고 "'제한적' 공격을 하고 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은 현장 현실에서 크게 체감하기 어렵다"며 "라파 동부는 이미 전형적인 전쟁 지역이 됐고, 중부는 유령 도시로 변했으며, 서부는 사람들이 비참한 환경에서 혼잡하게 밀집된 상황"이라고 항변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날 하루 동안 가자 전역에서 최소 6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임시부두를 통해 구호품을 전달하겠다던 미국의 구상도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16일 이미 부두를 완성해 가자지구 해변에 접안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구호품을 현지 구호단체에 인계하는 과정에서 약탈 등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날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수송로 검토 끝에 가까스로 500톤 규모 구호품이 전량 구호단체에 전달됐다고 밝혔으나, 추후 약탈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NYT는 "세계식량계획(WFP) 등은 이스라엘이 구호품 분배를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임시부두 계획도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며 "적은 양의 구호품마저 이스라엘군에 포위된 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거의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