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 인도네시아가 탐사 보도와 성소수자(LGBTQ+) 관련 콘텐츠 제한을 추진한다. 언론 독립성을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움직임인 까닭에 현지에서 비판이 커지고 있다.
23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하원은 언론사가 탐사 보도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용이 담긴 방송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도 폭력성을 띤 콘텐츠처럼 제작·방영이 금지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다. 다만 이 같은 방향성이 알려지면서 현지 언론사와 시민사회 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독립언론인 협회는 “법안이 시행되면 언론은 더 이상 인도네시아에 뿌리 깊게 박힌 부패 문제와 연고주의, 환경 범죄 관련 폭로 기사를 쓸 수 없게 된다”며 “수십 년간 이어진 권위주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며 어렵게 얻은 언론 자유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8년 민주화운동으로 수하르토 군부 통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 언론이 정부 ‘나팔수’ 역할을 한 점을 언급하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3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꼬집은 셈이다. 니닉 라하유 언론위원회 위원장도 “언론 독립성이 사라질 수 있다”며 “법안 초안 작성 과정에서 언론위원회와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올해 2월 14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두고 현지 탐사저널리스트가 만든 다큐멘터리 ‘더티 보트(Dirty Vote·더러운 선거)’가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당선자가 국방부를 선거운동에 동원하거나 유세 과정에서 각종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를 ‘대중에게 잠재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정보’로 여기고 금지하는 내용을 두고도 반대가 거세다. 인도네시아 유명 영화제작자 자코 안와르는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 제한은 (영화, 출판 등) 창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독창성과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며 “위험하고 시행해서도 안 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전체 인구의 9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는 동성애에 부정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샤리아법(이슬람 관습법)이 적용되는 수마트라섬 아체특별자치주(州)의 경우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를 배척하거나 관련 서적, 영화 등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부가 나서서 해당 콘텐츠를 ‘범죄’로 규정하겠다는 의미다.
각계에서 반발이 커지자 법안을 추진 중인 하원은 “아직 초기 단계일 뿐 내용이 중도에 바뀔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한 하원의원은 로이터에 “우리가 동성애 혐오적이고 (언론에 대한) 감시를 지나치게 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