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지난 13일 미 오픈AI사가 공개한 '보고 듣고 말하는 인공지능(AI)'인 GPT-4o 홍보 영상에 한 시각장애인이 등장했다. 길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스마트폰에 탑재된 GPT-4o에 명령한다. "택시 잡아 줘." AI는 이렇게 답한다. "방금 한 대 찾았어요. 왼쪽 도로에서 오고 있으니 손 내밀어 부를 준비를 하세요."
사례 2) 한국기계연구원은 2023년 말 로봇 휠체어 개발에 성공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듈과 눕고 일어나는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모듈이 구현돼 있다.
두 사례 모두 각각 시각장애와 보행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이 기술을 보고 어떤 이들은 점자 안내문, 안내견, 보행도움을 주는 활동지원사 없이도 시각장애인들이 자유로이 길을 거니는 풍경을 상상했을 것이다. 로봇 휠체어 소식은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도 필요 없이 계단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휠체어 이용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런 기술 소식을 접할 때 두 가지 경계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 기술 자체가 장애를 극복하거나 장애인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식으로 과대포장되고 있진 않은가? 기술이 과대포장되면 이런 생각이 확산될 수 있다. "앞으로 AI 카메라로 앞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시각장애인의 외출도 문제없겠네?"
둘째, 법적으로 이미 보장된 권리를 확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다. 무의가 참여한 점포 경사로 설치 독려 프로젝트 '모두의 1층'에 대한 뉴스 댓글 중 하나를 보자. "이 정도로 점포의 경사로 설치 비율이 낮다면 점포마다 경사로 설치하는 대신 휠체어에 계단 올라가는 장치를 다는 게 더 나은 것 아닌가?" (모두의 1층은 서울 성수동 휠체어 접근가능 매장 비중이 단 13%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알리고 성동구에 경사로 설치 확대 조례 제정을 독려한 프로젝트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경사로 설치를 비롯해 이동약자들이 동등하게 동네 가게에 접근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만드는 건 장애 당사자들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에서는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약자들이 동네 어떤 가게나 편의시설이든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동네 가게도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중이용시설이므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주인 점포주나 건물주가 이러한 편의시설 설치를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휠체어에 장치를 달면 되겠네"라는 발상은 사회적인 장애물을 개인의 부담으로 돌리는 것이다. (참고로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스위스산 휠체어의 가격은 약 5,300만 원이다.)
경사로, 엘리베이터, 점자 스티커, 점자블록과 같은 '로테크(low-tech)' 또는 '노테크(no-tech)' 솔루션은 장애 당사자들이 남의 도움 없이도 쉽게 이동하고 정보를 접하며 일상생활의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권리의 영역이다. LG전자가 장애인을 비롯해 조금 다른 몸을 가진 고객들이 쉽게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선보인 '컴포트 키트'는 이런 권리를 반영한 노테크 솔루션의 사례다.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도 의류관리기기에 옷을 걸 수 있게 하는 핸들, 시각장애인 고객이 에어컨 리모컨을 쉽게 사용 가능하게 하는 점자 실리콘 커버와 같은 상품이다.
AI와 같은 하이테크 기술은 아니지만 장애 고객에게 공감하고 고민한 결실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쉽고 익숙한 방식으로, 장애 당사자들이 무언가 새로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가전제품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소문해 알아보니 LG전자는 몇 년 전 장애 고객들이 LG 가전제품을 쓰기 힘들다는 피드백을 들은 후 장애 고객 접근성 팀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시설, 제품,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를 챗GPT와 같은 AI봇에 입력하면 정답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권리에 실제로 공감해 장애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자고 설득하고, 그런 서비스에 비용을 투여하자고 의사결정하는 건 사람이다. AI가 할 수 없다. AI기술에 투자하는 것만큼 소수자들도 동등하게 기술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감'에 투자하는 기업과 조직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