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 공포에 질린 이스라엘 여군… 가족들 호소에도 네타냐후 요지부동

입력
2024.05.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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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군 병사들 납치 당시 모습 담긴 영상 공개
가족들 "당장 인질 석방 협상하라" 촉구
네타냐후는 "하마스 제거 결단 강화할 뿐"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여군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무장대원들에게 납치돼 가혹한 취급을 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영상을 직접 공개한 병사들의 가족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 "당장 이들을 데리고 오라"며 휴전 협상을 촉구했다.

피투성이 병사들… 하마스 대원들은 욕설·성희롱

미 CNN 방송 등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인질 가족 모임이 공개한 3분 분량의 영상에는 무장한 하마스 대원들이 5명의 여군 병사들을 납치해 가자지구로 끌고 가는 모습이 담겼다.

보디캠으로 촬영된 이 영상을 보면, 하마스 대원들은 병사들의 양손을 묶고 벽에 한 줄로 세운 채 심문했다. 병사들은 얼굴이 피범벅이 돼 있거나 멍이 들어 폭행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하마스 대원들에게 "팔레스타인 친구가 있다"며 애타게 간청하는 모습도 담겼다. 하지만 이들을 향해 하마스 대원들은 고성을 지르거나 욕설을 퍼부었고, "아름답다"며 모욕적 성희롱도 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7일 기습공격 당시 이스라엘 남부 나할 오즈 군기지에서 하마스가 납치한 여군 중 일부로,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청년들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작전 중 이 영상을 습득해 가족들에게 전달했는데, 가족들은 정부에 인질 석방을 위한 휴전을 촉구하기 위해 직접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질 가족 모임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전 세계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며 "이 끔찍한 영상은 123명의 인질들이 처한 현실이며, 229일간 인질을 데려오지 못한 정부 실책의 증거"라고 밝혔다. 이어 "이스라엘 정부는 한시도 낭비해서는 안 되며 즉시 인질 석방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영상이 공개되자 네타냐후 총리는 성명을 내고 "테러리스트들의 잔인함은 하마스가 제거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싸우겠다는 나의 결단력을 강화할 뿐"이라며 "우리가 본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휴전 대신 라파 공격 고삐… 반대했던 미국도 기류 변화

가족들의 바람과 달리,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휴전 협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진전될 기미가 없다. 그사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마지막 피란처'로 불리는 남부 도시 라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브리핑을 통해 주력 부대인 나할 보병여단을 라파에 재배치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군사작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왔다.

라파 공격을 만류해온 미국마저도 미묘하게 입장이 달라진 분위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주 이스라엘 측으로부터 라파 작전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며, "현재로선 이스라엘의 라파 군사작전이 비교적 표적에 집중하고 제한적인 것으로 보이고, 밀집된 도시 중심부에 대한 대규모 작전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찰스 브라운 미군 합참의장 역시 워싱턴 싱크탱크 애슬랜틱카운슬이 주최한 대담에서 "보고에 따르면 많은 민간인이 라파에서 빠져나왔다"고 언급했다.

두 사람의 발언을 놓고 미국이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을 용인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지금껏 미국은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할 대책을 강구하기 전까지 라파를 침공해선 안 된다며 이스라엘을 가까스로 억제해 왔다.

위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