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폭동' 상징 깃발 건 미 대법관... "트럼프 재판 안 돼" 요구 봇물

입력
2024.05.24 08:00
N면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친트럼프' 상징물
2021년 자택·지난해 별장에 걸었다 들통
"트럼프 '대선 불복' 재판 기피 요구 봇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난 대선 불복 관련 재판을 앞둔 미 연방대법원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부정선거 주장에 동원된 '친(親)트럼프' 깃발이 보수 성향 새뮤얼 얼리토 연방대법관의 자택과 별장에 걸렸던 사실이 드러나서. 그의 공정성이 의심을 사며 재판 기피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대법관이 폭동에 쓰인 깃발 걸어"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7, 9월 찍힌 사진 세 장과 8월 촬영된 구글 거리뷰 사진, 인근 주민 6명의 증언을 종합해 "지난해 얼리토 대법관의 뉴저지주(州) 별장에는 '천국에의 호소(an appeal to heaven)' 깃발이 게양돼 있었다"고 전했다.

소나무 그림과 '천국에의 호소'란 문구가 담긴 이 깃발은 우파 기독교 진영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이 쓰는 정치적 상징물이다. NYT에 따르면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때 만들어진 이 깃발은 오랫동안 잊혔다가 2013년 극우 기독교계에 의해 재발견됐다. 현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표시나 지난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퍼뜨리는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운동 등을 상징한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에 난입한 폭도들도 이 깃발을 들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선 패배에 불복해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가 초유의 위기를 맞았던 장면으로 회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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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10711480003819)


벌써 두 번째… '트럼프 재판 기피' 요구 빗발

얼리토 대법관의 '깃발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6일 NYT는 2021년 1월 17일 그의 버지니아주 자택에 미국 성조기가 거꾸로 걸려 있었다고 전했다. 위·아래가 뒤집힌 성조기는 '도둑질을 멈춰라' 운동의 명시적 상징이다.

이에 얼리토 대법관은 NYT에 이메일을 보내 "나는 성조기 게양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이웃이 마당 표지판에 불쾌한 언어를 쓰자 아내가 이에 대응해 잠깐 걸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의 아내는 마당에 반(反)트럼프 표지판을 내건 이웃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얼리토 대법관의 해명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그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 관련 재판에서 하차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6 국회의사당 폭동 선동 등의 혐의로 기소됐는데, 연방대법원은 몇 주 안에 그의 면책특권 등을 판단할 예정이다. 이에 민주당 하원의원 45명은 지난 21일 얼리토 대법관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재판 기피 촉구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두 번째 깃발 논란은 비판을 더욱 부채질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국 시민단체 '책임과 윤리' 회장 노아 북바인더는 "그는 자신이 지지한 것으로 보이는 반란 관련 사건에 대한 재판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AP는 "얼리토 대법관이 재판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고 지적했다. NYT는 "얼리토 대법관은 '별장 깃발'의 의도와 판사로서의 의무 등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얼리토 대법관은 본디 연방대법원 내 가장 보수 색채가 짙은 인물로 꼽힌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임신중지(낙태)와 동성혼을 반대해 왔다.

김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