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다 동물 이름이 3배... 환경교재 속 생물다양성 아쉽네

입력
2024.05.22 17:00
[22일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
국내 초중고 환경교재·교과서 8종 분석
식물, 언급 적고 '나무' '풀' 뭉뚱그려 언급
"식물종 접할 수 있는 교육활동 늘어야"

국내 초중고교 환경 교재에 생물다양성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식물종보다는 동물종에 대한 예시가 3배가량 많다는 것이다. 생태 그리기 등 학습활동에서도 식물은 동물의 배경으로 그려지는 등 덜 중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22일 박수진 서울 독산초 교사와 김재근 서울대 사범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환경교육 교재에서 나타난 식물과 동물 예시 불균형’에 따르면, 초중고 환경 교재 및 교과서 8종에 기재된 동물 예시는 1,306건으로 식물(607건)의 두 배가 넘었다. 중·고등학교 환경 교과서 각 2종과 서울교육청 생태전환교육교재 4종(초등 3종, 중등 1종)의 동식물 언급 빈도를 분석한 결과다. 단 ‘해충’ ‘가축’ 등 주관적 표현, ‘고구마감자오븐구이’ 등 음식 메뉴에 포함된 용어는 분석에서 제외됐다.

‘소나무’ ‘코끼리’ 등 이름 단위로 분석을 한정하면 불균형은 더 컸다. 식물 이름은 279회 등장했지만, 동물 이름은 3배가 넘는 866회 기재됐다. 교재별로는 적게는 2.8배(중학교 환경교과서), 많게는 43배(초등 고학년 교재) 차이가 났다.

이런 차이는 교재 속 식물이 ‘나무’ ‘풀’ 또는 아예 ‘식물’이라는 명칭으로 뭉뚱그려 언급될 뿐 구체적 식물종에 대한 예시는 드물기 때문이다. 한 고등학교 환경교과서의 경우 생물종 보호 실천과 관련해 동물은 ‘붉은귀거북과 같은 외래종을 키우다 쉽게 버리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언급한 반면 식물은 ‘습지에 살아가는 식물의 보호를 위해 인간들의 사용을 제한하고’라고만 서술했다. 식물 이름이 구체적으로 쓰이더라도 보리, 밀 등 작물이 언급되는 경우가 잦았다.

동식물이 다뤄지는 맥락도 불균형했다. 생물다양성을 주제로 한 학습단원에서 ‘전 세계의 많은 동물들이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고 동물만 언급되거나, 멸종위기 야생생물 또는 해양생물의 예시에 동물만 제시되는 식이다. 중고교 교과서의 생태환경지도 만들기 등 학습활동에서도 동물 사례만 제시되고 식물은 배경 그림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었다. 식물계가 포유류, 조류, 곤충 등 동물계 하위 계통과 같은 위계로 설명되는 오류도 나타났다.

박수진 교사는 “교재 및 수업 재료에서 다루는 생물다양성 소재가 주로 북극곰 같은 동물 예시에 편중돼 '과연 이런 편향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어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동식물 인식 불균형은 본래 미국의 과학 교육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인데, 우리나라 교재에도 같은 현상이 드러난 것이다.

연구진은 사회적으로도 식물보다 동물을 더 중시하는 편향적 인식이 있는데 교과서가 이를 더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불법 야생생물 거래 규제 및 멸종위기 생물 연구가 동물에만 치중돼 식물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지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박 교사는 “생물다양성을 느끼는 개인의 소양에도 직결돼 잠재적으로는 기후위기 해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생들이 주로 도시에 살면서 교과서를 통해 먼저 생태를 접하는 현실에선 교재 속 예시가 보다 균형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게 연구진의 제언이다. 박 교사는 나아가 “학생들이 실제로 식물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심 속 잡초 ‘괭이밥’ 등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관찰하는 활동이 생물다양성 교육에 담겨야 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는’ 수업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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