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 비상 사태에 대비해 쟁여 둔 휘발유를 시중에 대량으로 푼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체감 물가를 떨어뜨려 바닥까지 추락한 대통령 지지율을 반등하게 만들어 보려는 심산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북동부휘발유공급저장소(NGSR)’에서 100만 배럴(4,200만 갤런) 규모의 휘발유를 방출하기로 했다고 21일(현지시간) 밝혔다.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은 “자동차 운전이 많아지는 여름철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바이든 행정부는 주유소 휘발유 가격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5월 27일)와 독립기념일(7월 4일) 사이에 북동부를 대상으로 기름을 충분히 공급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미 전역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3.598달러 수준이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갤런당 5달러 위까지 솟았다가 정부가 이번처럼 전략 비축유를 대거 푸는 식으로 개입하면서 3달러 초반 선에서 안정됐다. 그런데 하필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은 미국 유권자 표심에 크게 작용하는 변수다.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4% 남짓)은 그리 크지 않지만, 가격 변동이 심한 데다 통근, 쇼핑, 자녀 등·하교 등에 차가 필수여서 비용을 줄이기도 어렵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주유소에 게시된 가격을 보기 때문에 경제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미국 경제분석기관 무디스 애널리스틱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지난 대선 투표 분석 결과를 근거로 전날 미 CNN방송 논평을 통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넘을 경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전략 비축유 전용은 고육책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NGSR은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북동부를 쓸고 지나간 뒤 벌어진 휘발유 공급 부족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설치했다. 물가 조절 용도로 비축유를 내다 팔면 사실상 전용인 셈이다. 당장 트럼프 전 대통령이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계략”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주저하기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사정이 급하다. 이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개한 ‘2023년 미국 가계의 경제적 웰빙’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적으로 ‘괜찮다’(39%)거나 ‘편안히 살고 있다’(33%)고 답한 비율(72%)은 2016년(70%)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비 9%까지 올랐던 2022년과 비교해도 1%포인트 하락했다. 연준은 “둔화세에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여전히 가장 큰 재정적 우려 사항”이라고 평가했다.
고(高)물가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17~20일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2022년 7월 기록한 재임 중 최저치 36%와 같았다”고 보도했다. 추세도 하락세다. 지난달보다 2%포인트 내려갔다.
역시 핵심 원인은 고물가 등에 따른 경제적 형편이었다. 응답자의 23%가 경제 문제를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꼽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경제 정책 지지율(40%)이 바이든 대통령(30%)보다 훨씬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