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처럼 들리는 외래어들이 있다. 요새는 덜 쓰는 말 같지만 경상도와 제주도에서는 '비누'를 '사분'이라고 불렀다. 표준국어대사전 항목은 따로 없고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어원 표시는 프랑스어 savon[사봉]이라 나온다. 근거는 병인양요(1866) 때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 펠릭스클레르 리델(Félix-Clair Ridel·한국명 이복명[李福明], 1830~1884)이 서양식 비누를 들였다는 설에서 유래하는 듯싶다. 그런데 병인양요가 벌어진 곳은 강화도 일대고 이복명 신부는 서울에서 주로 활동했으니 '사분'이 주로 쓰인 지역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리델 주교는 조선에서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한불자전(韓佛字典·Dictionnaire coréen-français, 1880)도 펴냈다. 표제어에 비누(pi-nou 批累 savon)와 비누질(pi-nou-tjil, laver au savon; savonnage)은 있으나 사분은 없다. 샤분, 싸분, ᄉᆞ분 같은 표기도 없다. 비누는 박통사언해(1677)에 '비노'로 나오고 중국어 肥皂[비조, féizào]가 어원일 것이다. '사분'은 일본과 가까운 영남과 제주에서만 쓰는 일본어 외래어가 꽤 있음을 감안하면 일본어 シャボン[샤본]이 직접 어원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일본어는 메이지 시대부터 '비누'의 뜻으로 石鹸[셋켄]을 쓰고 에도 시대까지 많이 쓰던 '샤본'은 거의 シャボン玉[샤본다마: 비눗방울]에만 나온다. 주요 일본어 사전들은 어원을 포르투갈어 sabão[사방]으로 여기고, 일본국어대사전은 스페인어 jabón[하본]의 17세기 이전 발음·형태 xabon[샤본]으로 여긴다. 둘 다 가능하겠으나 사투리나 옛말로 サボン[사본]이라는 꼴도 있으니 이는 포르투갈어에, シャボン[샤본]은 스페인어에 들어맞을 듯싶다.
근세 포르투갈어 sabon, sabõ[사봉]은 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 sabun, 힌디어 साबुन[사분], 스와힐리어 sabuni 등 여러 아시아 아프리카 언어에 퍼졌다. 그런데 이들 언어는 접촉한 언어가 많아서 직접 어원이 아랍어 صابون[사분]일 여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태국어 สบู่[사부], 크메르어 សាប៊ូ[사부]도 어원이 포르투갈어로 간주되지만 아랍어나 말레이어일 수도 있고 라오어 또는 크메르어라면 프랑스어일 수도 있다.
베트남어는 xà phòng[북 베트남어(하노이 표준어) 싸퐁], xà bông[남 베트남어 싸봉]처럼 확연한 프랑스어 영향을 드러낸다. 터키어 sabun은 아랍어에서 왔다. 발칸반도와 중앙아시아에서 '비누'는 터키어, 페르시아어 등 여러 언어가 개입됐겠고, 유래는 터키어←아랍어← 아람어← 그리스어← 라틴어(sapo, saponem)←게르만어(원시 서게르만어 saipa: 영어 soap, 독일어 Seife[자이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틴어에서 건네준 말이 훨씬 많지만 후기 라틴어와 로망스어의 생활 밀착형 어휘 중에는 게르만어도 꽤 많다.
영남, 제주 방언 '사분'은 혹시 프랑스어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일본어에서 들어온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일 것이다. 비누처럼 여러 언어를 거치며 넓게 퍼진 사물을 일컫는 낱말은 딱 하나의 어원만 집어내기가 어렵다. 어쨌든 그래도 '사분'은 로망스어가 어원이고 궁극적 어원이 게르만어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100퍼센트 단정은 어려운데, 많은 어원이 손에 잡힐 듯 안 잡히는 미끌미끌한 비누와도 비슷하다. 어느 누구의 손에 잡혀 머무르지 않고 여럿의 손을 거치면서 세계를 돌아다닌 수많은 말은 비누의 성질과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