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노동, 연금 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3대 국정과제이다. 이 중 현안은 연금개혁이다. 그동안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논의돼 왔는데 최근 결렬됐다. 현재 국민연금 제도에서 가입자는 기준소득의 9%(보험료율)를 납부하고 평균생애소득의 4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는다. 여야는 보험료율 13% 인상에는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을 놓고 43%와 45%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어떻게든 합의안을 도출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논의 중단과 22대 국회에서의 재추진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소득대체율을 둘러싼 2%포인트의 이견은 드러난 암초일 뿐이고, 이번 연금개혁특위는 논의 대상과 방법, 나아가 추진체계에 큰 결함이 있어 제대로 된 개혁안 도출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첫째, 논의 대상의 결함이다. 지금 국민연금 제도에서 현재 가입자는 자신이 내는 금액보다 더 많은 연금을 노후에 받는다. 미래 세대가 모자라는 금액을 부담해주는 덕택이다. 현 세대는 빚을 내어 노후자금으로 쓰고 그 빚은 미래 세대에게 넘기는 셈이다. 인구가 증가할 때에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 넘어갈 만한 수준에서 관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미래 세대는 지금 세대가 남긴 빚을 감당하다 보면 점점 많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고, 그 결과 막상 자신은 낸 돈보다도 적은 연금을 받게 된다. 개인의 경우 부모로부터 받을 것이 빚밖에 없다면 상속을 거부할 수 있다. 연금이라고 해서 "미래 세대가 빚밖에 기대할 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무시하면 곤란하다. 그동안 국회에서 논의된 방안은 모두 이 원칙에 어긋난다. 야당의 최초 방안은 오히려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빚을 더 크게 한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평가가 맞다. 여당의 방안은 남기는 빚을 좀 적게 할 뿐, 미래 세대는 여전히 낸 것보다 적게 받는 방안이므로 땜질 처방이다. 근본적 개혁방안은 없는 것일까.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안한 신연금 분리방안은 연금 개혁의 기본 원칙을 충족시키는 제대로 된 방향의 사례이다. 기본 원칙을 지키는 방안들로 논의대상을 확충해 진정한 개혁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둘째, 논의 방법의 결함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숙의 공론조사'라는 새로운 논의 절차를 도입했다. '시민대표단'을 구성해 '숙의'하도록 한 뒤 공론을 조사했다. 국회가 이미 국민의 대표인데, 왜 별도의 시민대표단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또 시민대표단은 현시점의 유권자로 구성되므로 미래 세대는 공론조사에서 배제된다는 결정적 흠결이 있다. 현 제도하에서 빚을 물려받아 낸 돈보다 적은 연금을 받게 될 미래 세대는 '먼' 미래의 존재가 아니다. 지금 20세 미만이 모두 그 미래 세대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연금의 이해당사자이다. '숙의 공론조사'를 하려면 이들 미래 세대에게 참관 자격이라도 줘야 한다.
셋째, 추진체계의 결함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에 정부는 자신의 개혁안을 내놓지 않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통령의 적극 의지가 행정부의 구체 방안으로 담보되지 않은 개혁이 추진동력을 얻기는 어려웠다. 이번 국회의 논의 결렬은 이러한 우리나라 정치현실의 재확인인 셈이었다. 다음에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 방안이 국민에게 제시되고 국회의 논의와 공론을 주도해야 한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최소 70년을 바라보고 연금개혁을 재추진해 임기 내 완수하겠다고 천명했다. 과연 진정한 연금개혁을 이뤄낸다면, 70년이 지난 뒤에도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에 남긴 그 공적이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