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린이 제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국가통합인증마크(KC)가 없는 경우 해외 직구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흘 만에 뒤집었다. 인터넷 맘카페와 전자기기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소비자 선택을 제한해 가격만 올라갈 것’이란 반발이 커지자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막겠다고 사실상 물러섰다. 대통령실도 20일 “국민 혼란과 불편을 드렸다”고 사과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재발방지책을 지시했다.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된 건 지난 3월이다. TF엔 관련 부처 14곳이 참여했다. 정책 발표일엔 인천공항 세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도 열렸다. 이처럼 대규모 TF를 구성해 두 달간 준비하면서도 소비자 반응과 부작용을 점검하지 못했다는 건 정부 무능을 드러낸 것이다. 국민 눈높이에서 정책을 세운 게 아니라 갑의 위치에서 행정편의주의로 접근한 결과다. 현장에서 발로 뛰지 않고 책상에서 회의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번 발표한 정책을 사흘 만에 뒤집은 것도 무책임하고 황당하다.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쇼핑 앱 판매 제품에서 발암물질 등이 검출되고 있는 건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취지마저 퇴색되고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이번 사태는 현 정부가 정책을 너무 쉽게 즉흥적으로 내놓는 게 아닌지 묻게 한다. 정책은 국민 생활과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발표 전 심도 있고 다각적인 검토는 필수다. 정책 효과를 위해선 일관된 추진이 중요하고, 정권 교체에도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는 건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충분한 논의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반응이 안 좋자 슬그머니 사라지는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사교육 카르텔 타파와 킬러문항 배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복원, 의대 증원 2,000명 고수,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주식 공매도 금지 등이 모두 그랬다. 프로가 돼야 할 정부가 아마추어처럼 일하면 국민 혼란은 커진다. 설익은 정책 발표와 철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