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하러 대선 격전지 간 바이든에… 등 돌린 흑인 대학 학생들

입력
2024.05.21 04:30
14면
바이든, 조지아주 대학 졸업식 축사
‘반전 표심’ 돌리려 “휴전 노력” 언급
“차별 근절” 외쳐도 일부 학생은 항의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당시 ‘몰표’로 신승을 안겨줬던 흑인 유권자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 격전지로 향했다. 유서 깊은 흑인 대학을 승부처로 골랐지만, 여전히 가자지구 전쟁 반전(反戰) 시위 영향권이었다.

“피는 같은 색”… 트럼프 저격

바이든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에 있는 모어하우스대를 찾아 졸업식 축사를 했다. 모어하우스대는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졸업한 명문 흑인 남자 대학이다. 올 들어 가자 전쟁 반대 시위가 한바탕 흔들어 놓은 대학 캠퍼스에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을 하러 간 것은 처음이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소탕하겠다며 전쟁을 이어가자 미국 내에서는 반전 시위가 이어졌다.

이날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전 표심을 돌리려 애썼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무고한 생명을 죽이거나 사람들을 인질로 삼았고, 그 와중에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거나 고통받고 있다. 이는 인도적 위기”라며 즉각 휴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행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겨냥한 것은 졸업생과 가족들의 흑인 정체성이었다. 여전한 불평등을 부각했다. “여러분은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에 의해) 살해당한 해(2020년)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며 “흑인이 공정한 기회를 얻으려면 남보다 10배는 더 뛰어나야 한다. 무엇이 민주주의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내가 민주주의를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한 일도 많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우리는 흑인 공동체에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이 투자하고 있다”며 학자금 대출 탕감, 흑인 아동 빈곤율 축소 등 흑인이 수혜자인 정책 성과를 홍보했다. 첫 흑인 여성 대법관 및 부통령을 지명한 이가 자신이라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자신과 대조하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는 남부연합(1860년대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 11개 주) 깃발을 들고 의사당을 습격한 사람들을 애국자라 부른다”며 “그들이 과거 파시스트처럼 이민자가 우리 피를 오염시킨다고 하지만 우리 피는 모두 같은 색”이라고 꼬집었다.

400여 명 중 20명 남짓만 박수

그러나 반응은 대부분 냉담했다.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일부 졸업생은 등을 돌린 채 앉았고, 팔레스타인 전통 스카프인 카피예를 두른 학생도 있었다. 총장이 승인한 ‘조용한 항의’였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모자에 꽂고 단상에 오른 졸업생 대표 디안젤로 플래처는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게 모어하우스 일원이자 한 인간으로서 내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400명 넘는 졸업생 중 20명 남짓만 연설에 박수를 쳤다”고 보도했다. 아들의 항의를 만류하는 부모도 보였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저녁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건너가 흑인 단체 만찬에 참석했다. 조바심이 낳은 빠듯한 일정이었다. 조지아와 미시간 둘 다 2020년 대선 때 10명 중 9명이 표를 준 흑인 덕에 간신히 이긴 주다. 하지만 이제 이 지역 흑인 둘 중 하나만 그를 지지한다는 게 최근 여론조사 결과다. NYT는 “가자 전쟁과 경제 근심이 이탈 배경”이라며 “경제는 백인보다 흑인의 평가가 더 나쁘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